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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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사람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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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스스로를 ‘평범’하다 여겼던 진아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된다. 상대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잘생기고 능력 좋은 진아의 직장 상사. 소설 <다른 사람>의 시작은 진아라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이다. 진아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말들, 그 말들에 아파하는 진아, 그리고 여전히 진아 곁을 맴도는 가스라이팅의 흔적들을 읽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네이트판에서나 읽을법한 경악스러운 내용이 눈앞에 촘촘히 적혀 있어 피로하다. 피로해서 진아의 손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문제에 등을 돌려 왔나. <다른 사람>은 진아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그래서 한줌 되지 않은 우리의 ‘피로감’으로 지나쳐버렸던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닿는다.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음복’에 대한 오은교 평론가의 해설에 이런 분석이 있다. ‘작가 강화길은 언제나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서사가 아니라 여성들도 싫어하는 여성의 욕망을 탐구하는 일에 자신의 커리어를 바쳐왔다(43p)’. 당시에는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들을 탐구했다는 이야기가 어떤 뜻인지 알지 못했으나 이후 강화길 작가의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어렴풋이 이해해가고 있다. 작가는 그 여성들이 왜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이 되었는지,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겨내어 가면서 그 서사를 읽어낸다. 그들을 혐오스럽고 이상하게 만든 근본적인 구조를 집요하게 쫓아가 끝에는 독자로 하여금 그 여성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이해를 통해 연대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여적여’라는 출처 모를 말을 정당화시키는 분위기에 보기 좋게 찬물을 끼얹는다.


특징적인 것은 <다른 사람>에선 여성의 ‘피해자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것이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이겠지만 부당한 구조에 복역해온 서사에서 여성 또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잘잘못을 가려 보기 위함이거나 가해 남성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을 완전무결한 ‘대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성 또한 끊임없이 성찰해야만하는 ‘인간’임을 증명해보인다. 사회는 여성을 피해자성에 가두고 그 기준에 조금만 벗어나면 기다렸다는듯이 마녀사냥을 해 보인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는 서사를 부여하면서 피해 여성에게는 피해자성만 강조하는 사회다. 작가는 여성의 욕망을 바로 보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 서사를 내놓는다. 부당한 세상에게 날리는 묵직한 한방이다.


연대의 뜨거움과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날카로움이 존재했던 <다른 사람>. 존재해줘서,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곧 신간 나오던데 기대된다. 앞으로도 믿고 읽게 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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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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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도 제법되고 글씨도 촘촘해보이는데다가 목차를 읽으니 역사책 같아보여서 슬쩍 겁을 먹었다. 같은 독자도 몇몇 같다. 그러나 쓸데 없는 겁이다. 여는 글부터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이다. 서두에서부터 태초의 지구에서부터 기후의 영향이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영향이 위치한 지형에 따라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설명은공간이 만든 공간 관통하는 흐름이 되는데, 기후와 지형에 따른 차이가 어떻게 지금의 건축양식이 되었는지 사이의 이야기들을 엮어내려간다. 여행지에 가면 나라 고건축물을 보고 올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냥 아름답기만 했던 건축물들의 계보를 찾아가는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어렵지도 않다. 나같은 비전공자에 문과(?) 읽기에도 흥미롭다. 곳곳에는 본문에서 설명한 내용을 참고할 있도록 이미지 자료도 삽입되어 있다.


책은 건축에 대한 교양서로 거시적 관점을 통해 유명 건축물들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보는 건축물이 어떻게 이런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름답다,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건축물들을 건축 문외한이 봤을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공간이 만든 공간> 읽었다면 적어도어떻게이런 건축물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지 정도는 판단할 있게 된다. 그동안 보이는 외형만으로 평가해왔다면 적어도 계보를 따라 건축물이 지닌 가치정도를 가늠해볼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고 오고가며 마주치는 건축물들을 보며 건축물이 설계된 배경과 가치를 가늠해본다. 물론 일상공간에서 마주하는 건축물에는 그런 고민을 발전시키기엔 한계가 많아 얼른 여행을 떠나고 싶단 마음이 가득하다


<공간이 만든 공간> 창조란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유현준 교수의 관점도 엿볼 있다. 디지털 기술이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오늘날, 건축 또한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여 전에는 구현해 없었던 설계와 기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현준 교수는디지털과의 융합은 이루어져야겠지만 동시에 아날로그적 인간성을 포함시켜야한다 말하며실패한다면 우리는 기계적 획일성에 매몰될 이라고 경고한다. 과거 건축이 자연이라는 변수에 적응하며 발전해왔고 그것이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였다면 기술발전으로 자연 변수를 통제할 있게 오늘날에서의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하며 건축가 스스로도 대답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건축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발전 시대, 무엇이든 구현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되새겨야할 관점이기도 하다.


내용에 비해 책이 어렵지 않다(역시 교육계에 종사하셔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고 논리 흐름이 끊기질 않아 편하게 따라가면 된다. 여러 글들을 묶으신건지 챕터의 서두가 반복될 때가 있는데 역시도 교수님께서 수업 전에 지난 수업 내용을 복기해주시는 같다. 덕분에 비전공자임에도 어렵지 않게 건축물의 계보를 맛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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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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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작가의 소설은 조부모가 곁에 누운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적 이야기 같다. 인물 자신이 겪어낸 삶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풀어내는데 그 이야기들을 엮다보면 거대한 역사가 된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내딛었음에도 어느 사이 역사의 중심에 들어서 시대의 고민과 고통을 온 마음으로 겪어내는 기분이다. <철도원 삼대>도 마찬가지였다.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개인의 이야기는 영등포 땅에 철도가 처음 놓이게 된 그 시절, 그 시절을 살아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져 올라간다. 


 이야기 시작에 등장하는 인물 ‘이진오’는 해고 노동자로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중이다. 담담히 적어내려간 묘사임에도 고공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분하고 힘겨웠을지, 그 높은 곳에서 버티는 시간들이 얼마나 고단할지, 그런 것들이 밀려와 목까지 차 오른다. 작가는 ‘이진오’의 삶에서 머물지 않는다. 책 제목이 <철도원 삼대>인 것처럼 고공농성에 오른 해고 노동자 이진오를 시작으로 아버지 노동자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노동자 세대를 그리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노동자 이진오가 있기까지 노동자의 삶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삼대와 이어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야기꾼은 한 둘이 아니다. 다양한 인물 중에는 작가의 소설들에 종종 등장하는 ‘혼령’이라는 매개체도 어김 없이 나온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으면서도 산 것처럼을 말을 거는데 그 순간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혼령은 죽은 자다. 인간은 살아있는 시간에 겪은 일들만 알고 있지만 혼령은 죽어서 겪은 일들까지 알고 있다. 혼령을 매개체로 차용함으로써 살아있는 인간이 알지 못했던 살아있지 않았던 시간에 일어난 이야기들을 연결해낸다. 그것들이 위아래로 좌우 옆으로 층층이 쌓여 시대를 폭넓게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란 유명하신 누군가에 의해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소설의 결말은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내가 읽은 책은 소설의 일부분을 담은 가제본이다. 결말을 아직 읽지 못해 작가가 결국 종국에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작가의 질문은 선명하다. 철도원 삼대 이야기를 통해 영등포에 처음 기차가 달리던 그 시절, 조선땅을 달리면서도 일본이 관리하던 철도원에서 노동자로 살던 그 시절로부터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진게 맞느냐고 묻는다.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몰랐다고, 모르겠다고 가볍게 얘기하기엔 무거운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학이 얼마나 될까. 노동자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문학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궈낸 일상을 살아감에도 노동자의 이야기엔 무심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철도원 삼대>는 오래도록 읽히고 읽혀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덧)

<철도원 삼대>의 주 배경지인 영등포와 영등포역 그리고 그 주변 풍경의 역사를 보는 재미도 있다. 작가가 유소년 시기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라던데 더 실감나게 묘사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서울 살진 않아서 그 모습이 그려지진 않지만 현재 거주 중이라면 지금의 모습과 소설 속 풍경을 비교해보며 읽어도 재밌겠다.




**구입하여 읽은 후 추가로 적은 글


<철도원 삼대>를 읽으며 새삼 내가 알고 있던 근현대사가 마치 오래되고 곳곳에 구멍이 난 옷에 새로운 천을 덧댄 누더기 같이 느껴졌다. 아무리 승리한 자들에 의해 역사가 쓰여진다지만 시대를 고달프게 살아내며 저항하던 이들의 역사는 어디에 새겨져 있단 말인가. 한국문학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알지 못했던 우리네 근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책의 중반부터 후반의 내용은 일제와 자본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사명을 갖고 반일 투쟁과 노동자 투쟁을 함께 조직하고 싸워간 그 시대 사회주의자들의 치열하고 지난한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다. 아직까지도 레드콤플렉스가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자’의 이야기라니, 거부감이 들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잊혀진 우리네 역사다. 비록 정파 간 갈등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 시대에 무산자 계급과 함께 고민하고 싸우던 사상은 사회주의였으며, 많은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꿨고 비인간적인 대우에 저항하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이야기들을 <철도원 삼대>는 담고 있다. 


소설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를 담아낸다. 남북 분단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다. 분단의 역사를 직접 겪어냈고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았던 작가는 소설 속에서도 편향 없이 두 곳 모두를 한 몸에서 태어난 형제로 그리고 있다. 분단의 역사가 점점 희미해지고 한반도라는 명칭이 구태로 느껴지는 오늘날, <철도원 삼대>는 저기 부산에서부터 만주까지 철로가 이어져 있다고, 그 철로를 따라 철도를 타고 오고가던 이들은 한민족이었다고 말한다. 소설 속엔 한반도의 남과 북, 좌와 우를 가로지른 역사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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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 보조작가 김국시의 생활 에세이
김국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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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어렸을 적엔 자고로 삶이란 꿈을 갖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걸어나가야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꿈은 현실벽에 부딪힌지 오래고 목표는 바쁜 일상으로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다. 목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뿐이다. 내게 주어진 일상으론 그거 따라하다간 남은 삶마저 갈려나갈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삭삭 갈려서 다시 태어나는게 좋았을까. 나는 무얼 하기 위해 살아가나, 이런 생각이 가득할 때쯤 하던 일들을 모두 멈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곰곰히,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무얼 위해 살아갈까?


 나 같은, 그러니까 일도 없고 돈도 없으면서도 행복 찾아 삼만리인 젊은이라면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바람빠진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런 걱정들을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나부터도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내 통장엔 00만원(금액은 비밀이다)밖에 안 남았고’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다. 이 불안정함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덤이다. 안 받고 싶은 덤인데 어쩌겠나. 어거지로 밀어넣어주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안고 가야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 가혹한 덤을 어깨에 지고도 갈만한 여정이라는 것을. 아니, 가야만 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비록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지만 말이다.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는 스물 셋에 알바로 시작해, 6년동안 다양한 분야의 방송작가 일을 하며 질기게 버텨오던 보조작가 김국시의 고군분투기다. 열악한 노동조건도 부당한 대우도 참고 견뎌야 겨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짠내 나는 방송작가의 경험담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애달픈 고민들이 담겨있다. 특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써내려가 많은 공감이 느껴진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같은 곳을 맴돌고 있다는 생각에 지쳐가고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쯤 왔는지도 모른 채 주저 앉았다고 말하며 ‘얼마나 이렇게 주저앉아 쉬어야 다시 내 호흡을 찾을 수 있을까, 이대로 내 안에 있는 숨을 다 내뱉고 영영 쓰러져버리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고 말하는 김국시 작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겨드랑이가 찌릿찌릿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땐 저 깊숙한 곳에 덮어두었던 일들이 생각나 울컥했다. 작가라는 직업은 아니지만 나도 무언가를 창작하는데 몰두해야하는 일을 했었다. 일정 직급에 오르지 않으면 내내 막내처럼 부려지는 그런 일. 그래서 일이 시작되면 일상이 무너졌다. 열심히 몰두해서 일을 마무리했지만 남는 건 나빠진 건강과 보고서에 들어간 내 이름 석자. 그래, 이걸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기쁘진 않았다. 너무 지쳤던걸까. 김국시 작가처럼 나 또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나아갈 궁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이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집어든 고작 손바닥만한(그렇지만 귀여운!) 책 한 권이, 무작정 열심히 살아야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먹먹하다. 


 그렇지만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는 우울함만 가득한 에세이는 아니다. 꿈을 향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거나 희망찬 미래가 가득할거란 허무한 결말로 끝내는 에세이도 아니다. 달달한 살구색 표지에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그만큼 귀여운 김국시 작가의 말투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삶이 늘 괴롭고 힘든 일만 있는건 아니니까. 소소한 행복도 우리 곁에 살고 있으니까. 작가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단짠단짠 조화로운 맛이다. 김국시 작가가 아프게 적어 놓은 그 마음들을 읽으며 내 마음도 이랬던 것 같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기도, 행복한 시간들은 그저 여행의 추억을 얘기하며 함께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이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김국시 작가의 말에 다른 사람들에겐 말 못했던 소박하지만 소중한 나의 행복들을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를지도 모른다. 답을 주는 책은 아니니까. 다만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가벼워진만큼 더 방방 뛰며 김국시 작가처럼 행복을 찾아 살고 싶단 마음이 생길 것이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잠시 멈춤’의 시간을 살아가는 당신들이 생각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 결정을 하기까지 지난한 시간들을 보냈음을 김국시 작가의 삶을 통해 짐작해본다. 대단한 걸 해줄 순 없지만, 그저 ‘어디에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해 곧 떨어져나갈 것만’ 같지만 여전히, 조용히 오늘도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김국시 작가와 당신들 그리고 나를 응원해본다. 비록 내 통장엔 00만원(끝까지 금액은 비밀로 하겠다)밖에 안 남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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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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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가까운> 리베카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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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시골책방 봄날에서 구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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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앞에 혼자서는 처리할 없는 산처럼 쌓인 살구들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살구들은 그녀의 어머니 집에 있던 살구나무에서 따온 것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이상 살구들을 처리할 없게 되자 결국 그녀의 몫이 되었다. 앞에 쌓여있는 살구들. 그녀는 이제 성하지 못한 살구들을 골라내고 남은 살구들을 처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 곳곳에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마치 미뤄두었던어머니 이야기를 꺼내 골라내고 담아내야하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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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은 어머니와의 팽팽했던 갈등부터 시작해 알츠하이머로 인한 이해할 없는 행동들을 이해해보기 위해 어머닝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한다. 시도는감정이입이다.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하나의 장소가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라고. 그렇지만 <멀고도 가까운> 섣불리 어머니에게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갈등의 시간이 길었던 시간만큼 멀어진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해 가장 가까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소설 인물이나 작가의 이야기이도 했고 동물이나 장소에 대한 이야기일 때도 있었으며 지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종국에 그것들은 솔닛의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마치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떠난 이야기 여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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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페이지가 넘어 갈수록 <멀고도 가까운> 표지처럼 실타래가 되어 얽혀간다.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려고 노력하거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찾아 헤메인다면 오히려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는다. 또한 잠시 미아가 되기도 했는데, ‘완성된 이야기라는 고정관념이 나의 눈을 가렸던 같다. ‘우리는 자주 특별하거나 어마어마한 문제를 마주하면서도 거기에 그저 그런 대답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동화나 우화의 주인공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사는지에 관한 질문을 몸으로 보여주지만, 결말은 그에 대한 진짜 대답이 아니다. 모험이나 위기를 겪는 동안 주인공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결심, 임기응변, 협력,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남다른 생각에 이끌려 움직일 뿐이다.’라는 솔닛의 지적처럼 그녀는 관습적인 결말을 서술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변화가 잉태되는 순간 이야기한다. 여타의 책들처럼 하나의 결말로 흘러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솔닛은 오늘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경험하고 사유하고 써내려 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녀의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면 정형화된 결말이 없는, 그럼에도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을 지닌 솔닛의 글을 낯설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려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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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

개인적으로 신체적 고통에 대한 통찰이 매우 감명 깊었다. 특히 나병에 걸렸을 무감각 상태가 자아를 축소한다는 것과 신체적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이 나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해석에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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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2)

책의 구성부터가 멀고도 가깝다. 목차를 살펴보면 서두의 제목들이감다’, ‘매듭’, ‘풀다 거쳐 다시 처음의 제목들로 돌아가는 형식이다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가깝지만 멀었던 곳에서부터 시작해 멀지만 가까운 곳에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재밌게 읽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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