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사람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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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스스로를 ‘평범’하다 여겼던 진아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된다. 상대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잘생기고 능력 좋은 진아의 직장 상사. 소설 <다른 사람>의 시작은 진아라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이다. 진아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말들, 그 말들에 아파하는 진아, 그리고 여전히 진아 곁을 맴도는 가스라이팅의 흔적들을 읽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네이트판에서나 읽을법한 경악스러운 내용이 눈앞에 촘촘히 적혀 있어 피로하다. 피로해서 진아의 손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문제에 등을 돌려 왔나. <다른 사람>은 진아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그래서 한줌 되지 않은 우리의 ‘피로감’으로 지나쳐버렸던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닿는다.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 ‘음복’에 대한 오은교 평론가의 해설에 이런 분석이 있다. ‘작가 강화길은 언제나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서사가 아니라 여성들도 싫어하는 여성의 욕망을 탐구하는 일에 자신의 커리어를 바쳐왔다(43p)’. 당시에는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들을 탐구했다는 이야기가 어떤 뜻인지 알지 못했으나 이후 강화길 작가의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어렴풋이 이해해가고 있다. 작가는 그 여성들이 왜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이 되었는지,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겨내어 가면서 그 서사를 읽어낸다. 그들을 혐오스럽고 이상하게 만든 근본적인 구조를 집요하게 쫓아가 끝에는 독자로 하여금 그 여성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이해를 통해 연대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여적여’라는 출처 모를 말을 정당화시키는 분위기에 보기 좋게 찬물을 끼얹는다.


특징적인 것은 <다른 사람>에선 여성의 ‘피해자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것이 혐오스럽고 이상한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이겠지만 부당한 구조에 복역해온 서사에서 여성 또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잘잘못을 가려 보기 위함이거나 가해 남성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을 완전무결한 ‘대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성 또한 끊임없이 성찰해야만하는 ‘인간’임을 증명해보인다. 사회는 여성을 피해자성에 가두고 그 기준에 조금만 벗어나면 기다렸다는듯이 마녀사냥을 해 보인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는 서사를 부여하면서 피해 여성에게는 피해자성만 강조하는 사회다. 작가는 여성의 욕망을 바로 보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 서사를 내놓는다. 부당한 세상에게 날리는 묵직한 한방이다.


연대의 뜨거움과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날카로움이 존재했던 <다른 사람>. 존재해줘서,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곧 신간 나오던데 기대된다. 앞으로도 믿고 읽게 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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