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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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작가의 소설은 조부모가 곁에 누운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적 이야기 같다. 인물 자신이 겪어낸 삶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풀어내는데 그 이야기들을 엮다보면 거대한 역사가 된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내딛었음에도 어느 사이 역사의 중심에 들어서 시대의 고민과 고통을 온 마음으로 겪어내는 기분이다. <철도원 삼대>도 마찬가지였다.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개인의 이야기는 영등포 땅에 철도가 처음 놓이게 된 그 시절, 그 시절을 살아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져 올라간다. 


 이야기 시작에 등장하는 인물 ‘이진오’는 해고 노동자로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중이다. 담담히 적어내려간 묘사임에도 고공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분하고 힘겨웠을지, 그 높은 곳에서 버티는 시간들이 얼마나 고단할지, 그런 것들이 밀려와 목까지 차 오른다. 작가는 ‘이진오’의 삶에서 머물지 않는다. 책 제목이 <철도원 삼대>인 것처럼 고공농성에 오른 해고 노동자 이진오를 시작으로 아버지 노동자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노동자 세대를 그리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노동자 이진오가 있기까지 노동자의 삶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삼대와 이어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야기꾼은 한 둘이 아니다. 다양한 인물 중에는 작가의 소설들에 종종 등장하는 ‘혼령’이라는 매개체도 어김 없이 나온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으면서도 산 것처럼을 말을 거는데 그 순간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혼령은 죽은 자다. 인간은 살아있는 시간에 겪은 일들만 알고 있지만 혼령은 죽어서 겪은 일들까지 알고 있다. 혼령을 매개체로 차용함으로써 살아있는 인간이 알지 못했던 살아있지 않았던 시간에 일어난 이야기들을 연결해낸다. 그것들이 위아래로 좌우 옆으로 층층이 쌓여 시대를 폭넓게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란 유명하신 누군가에 의해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소설의 결말은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내가 읽은 책은 소설의 일부분을 담은 가제본이다. 결말을 아직 읽지 못해 작가가 결국 종국에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작가의 질문은 선명하다. 철도원 삼대 이야기를 통해 영등포에 처음 기차가 달리던 그 시절, 조선땅을 달리면서도 일본이 관리하던 철도원에서 노동자로 살던 그 시절로부터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진게 맞느냐고 묻는다.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몰랐다고, 모르겠다고 가볍게 얘기하기엔 무거운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학이 얼마나 될까. 노동자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문학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궈낸 일상을 살아감에도 노동자의 이야기엔 무심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철도원 삼대>는 오래도록 읽히고 읽혀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덧)

<철도원 삼대>의 주 배경지인 영등포와 영등포역 그리고 그 주변 풍경의 역사를 보는 재미도 있다. 작가가 유소년 시기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라던데 더 실감나게 묘사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서울 살진 않아서 그 모습이 그려지진 않지만 현재 거주 중이라면 지금의 모습과 소설 속 풍경을 비교해보며 읽어도 재밌겠다.




**구입하여 읽은 후 추가로 적은 글


<철도원 삼대>를 읽으며 새삼 내가 알고 있던 근현대사가 마치 오래되고 곳곳에 구멍이 난 옷에 새로운 천을 덧댄 누더기 같이 느껴졌다. 아무리 승리한 자들에 의해 역사가 쓰여진다지만 시대를 고달프게 살아내며 저항하던 이들의 역사는 어디에 새겨져 있단 말인가. 한국문학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알지 못했던 우리네 근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책의 중반부터 후반의 내용은 일제와 자본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사명을 갖고 반일 투쟁과 노동자 투쟁을 함께 조직하고 싸워간 그 시대 사회주의자들의 치열하고 지난한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다. 아직까지도 레드콤플렉스가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자’의 이야기라니, 거부감이 들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잊혀진 우리네 역사다. 비록 정파 간 갈등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 시대에 무산자 계급과 함께 고민하고 싸우던 사상은 사회주의였으며, 많은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며 더 나은 사회를 꿈꿨고 비인간적인 대우에 저항하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이야기들을 <철도원 삼대>는 담고 있다. 


소설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를 담아낸다. 남북 분단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다. 분단의 역사를 직접 겪어냈고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았던 작가는 소설 속에서도 편향 없이 두 곳 모두를 한 몸에서 태어난 형제로 그리고 있다. 분단의 역사가 점점 희미해지고 한반도라는 명칭이 구태로 느껴지는 오늘날, <철도원 삼대>는 저기 부산에서부터 만주까지 철로가 이어져 있다고, 그 철로를 따라 철도를 타고 오고가던 이들은 한민족이었다고 말한다. 소설 속엔 한반도의 남과 북, 좌와 우를 가로지른 역사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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