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더 이상 살 수 없다'거나, '죽을 것 같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랑에 배신당했을 때, 큰 사건을 겪었을 때 등등. 정신이 아득해지고 온 몸에 힘이 없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들.

허나 그런 순간들은 의외로 쉽게 극복된다. 어쨌거나 인간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야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 사람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라고 외쳐도, 대개의 사람들은, 결국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피폐해진 영혼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데야 다른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육신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너무나 쉽다.

아들을 잃고, 그 여파로 이혼을 하고, 직업 훈련소에서 아이들에게 목공을 가르치는 남자 올리비에. 그가 가르치는 소년들은 죄를 짓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이다. 그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름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건, 5년 전 아들을 살해한 아이 모르간. 열 여섯 소년답지 않게 작고 여려 보이는 그 아이는 소년원에서 5년을 보냈고, 목공을 배우러 왔다. 올리비에는 이 소년에게 어떻게 할까.

영화는 삶을 흉내낸다. 되도록 일상의 모습과 닮아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현실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야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없다. 내가 사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라면, 관객들은 굳이 극장을 찾지 않을게다.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각색과 과장과 편집이 필요하고, 인물들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알맞은 때에 적당한 음악을 깔아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한다. 카메라는 올리비에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핸드 헬드의 카메라가 주로 올리비에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올리비에와 전 부인, 올리비에와 모르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롱테이크가 이어지고, 그 안에 담긴 건, 그저 나날이 이어지는 올리비에의 일상 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운동을 하는 올리비에, 모르간에게 자꾸 시선을 주는 올리비에. 음악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얼마 안 되는 대사와 주변의 평이한 소음들 뿐.

그러니까, 영혼을 울리는 감동적인 화해, 따위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이 영화에서는.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죽인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그를 해칠까. 울고 소리지르고 발작이라도 일으킬까. 아니면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며 아름다운 눈물을 흘릴까. 이 영화는 용서와 화해와 감동이라는 일반적인 영화의 주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니까. 사람의 삶은 영화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평범한 감동을 권하지 않기에 오히려 감동이 되는 영화, 현실을 적당히 흉내내는 게 아니라 진짜 삶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영화. 가슴이 먹먹하다.

사족 한 가지. 평소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잘 듣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화면도 대사도 생각이 나는데, 음악만은 전혀 기억을 못한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쓰이지 않은 것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무 소리가 없다는 것, 극장 안이 침묵으로 가득했다는 것만은 특이했다. 그리고 그건, '단절'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영화 자체는 진짜 삶 같았는데, 역시 허구라는 것, 이제 영화가 끝났으니 당신들은 다시 당신들의 생활로 돌아가라는 메시지, 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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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2004-09-06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신다더니 이거 보셨나봐요. 전 못본건데 님의 수려한 글을 읽으니 마구 구미가 당깁니다. 갑자기 많은 페이퍼를 올리시니 제가 정신없이 보기는 봤는데 글마다 다 댓글을 달자니 적잖이 망설여지더군요.(제가 스토커인거 들통나기 싫어요!)
근데 극장에 가시는 줄 알았는데요...?
(자빠져 자느라 스토킹을 제대로 못한 어설픈 스토커의 구차한 질문;)

urblue 2004-09-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커라고 진작에 고백하셔놓고 뭘 또 새삼스럽게... ^^
토요일에 영화보고 들어와서 DVD랑 만화랑 또 보고, 일요일엔 하루 종일 집에서 굴렀답니다. 침대 커버랑 패드랑 싹 빨고 청소하고 한바탕 했지요. (이게 대답 맞는지 좀 헷갈리네...)

로드무비 2004-09-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었어요?
요즘 정신이 온통 적립금 5천 원에 팔려가지고설라무네...
저도 감상을 배제한 영화가 좋아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보고싶네요.^^

urblue 2004-09-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끝날거에요. 빨리 보셔요. 하이퍼텍 나다에서 한답니다. 님 댁에서 좀 먼가...

에레혼 2004-09-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를 보셨군요. 저도 갈망하는 영화인데.....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극장용으로 보기 어려울 듯하고, 나중에 디브이디라도 출시되면 구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느낌...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전해지네요.

유어블루님, 좋은 영화도 보시고, 좋은 리뷰도 쓰시고, 스토커도 있으시고^^, 부러워요!

urblue 2004-09-0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라도 안 보면 어디서 삶의 재미를 찾겠어요. ㅠ.ㅠ

어디에도 2004-09-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다에서 이거 해요? 안 그래도 어제 영화가 보고 싶어서 아니지
극장에 아주 가고 싶어서 뭔 영화들이 있나 한참 뒤적거렸었는데, 이건 못봤네요.
흑. 사실은 전 동네극장만 가요. 제가 좋아하는 씨네큐브, 하이퍼텍나다, 코아아트홀도 못가요. 흑흑.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
제 몫까지 블루님이 영화 많이 보시고 이렇게 글 올려주세요. 네? ^^
 
 전출처 : 에레혼 > Veruschka




"태초에 저 기막힌 스타이노르트라는 낙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전쟁이라는 연옥과 1944년 7월 20일의 지옥과
독일 전체의 붕괴라는 또 하나의 지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모든 잔해들로부터 저 아연실색할 여자아이가,
그녀의 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할 때 천사같은 얼굴을 지녔던
겨우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 Vera가 불쑥 모습을 나타내어
크고 또 커서 차츰차츰 Veruschka로 변해갔다.

이 세계의 가장 이름난 잡지들이 거대한 칡넝쿨같은 몸,
남녀양성을 겸한 듯한 까까머리의 그 수수께끼같은 얼굴,
기묘하고 독창적인 에로티시즘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는 그 Veruscaka...

보들레르였다면 열렬히 사랑했을 저 열대의 독이 담긴 꽃이
마침내 피어나기 위해서는 아마도 잃어버린 모든 행복, 용기,
너그러움, 폐허, 피, 눈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미셸 투르니에의 글 인용 -


Veruschka의 아버지 'Heinrich Count Ahasverus von Lehndorff'
는 독일 레지스탕스였으며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 푸줏간 갈고리에 연결된 피아노줄에 매달려
교수형 당함.

그 당시 다섯살이던 Vera는 자라 그림과 디자인공부를 마친 후
미국에서 슈퍼모델로 활동. Blow up을 포함하여 몇 편의
영화에 출현. Salvador Dali, Julien Schnabel, Andy Warhol,
Francis Bacon 등과 같이 작업.




- Shaving Cream Sculptures. Salvador Dali와의 작업장면.
New York 1963 -


1970년부터 Holger Trueltzsch와의 The mimikry dress art
시리즈 (London, Paris 1970 - 1973),
Oxydationen body painting 시리즈 (Hamburg, Germany 1975 - 1981),

그리고 Sirius - da wo der Hund begraben liegt- 시리즈
(Prato, Italy 1984 - 1988) 등 공동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

Veruschka를 사로잡은 주제들

I. 性(성)













II. 酸化(산화)

















III. 自然(자연)



































 

베루슈카(Veruschka) – 1939~


1939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풀 네임은 베라 고틀리베 안나 폰 렌도르프(Vera Gottliebe Anna von Lehndorff)지만, 베루슈카(Veruschka)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베루슈카는 1964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인기모델로 활동했다. 그의 초기 보디페인팅 작품들은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시도한 일련의 작업부터 이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변신’ 모티브를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공동작업자로서 베루슈카의 의도를 사진으로 옮겨낸 전방위 예술가 홀거 트륄치시(Holger Trueltzsch)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진짜처럼 그린 옷으로 맨살을 덮고 마초 남성과 요부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한 ‘The mimikry dress art’ 연작(1970∼73)은 ‘신디 셔먼 초기사진의 보디페인팅 버전’이라 부를 만하다. 단순히 옷을 흉내낸 초기 작품에서 몸 위에 자연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과정에까지 이르면, 사람이 사물이 되고 사물이 사람이 되는 베루슈카 특유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Mozambique Project’(1972), ‘Oxydationen body painting’ 연작(1975∼81)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
근작들은 보디페인팅을 촬영한 사진이기보다 마치 색면으로 처리한 추상회화를 감상하거나 여성주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베루슈카는 보디페인팅에 대한 얄팍한 편견을 넘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몸소 보여주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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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레혼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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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무렵 불도저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아저씨 몇 분이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바로 집 앞 골목에 수도관 교체 공사를 한대나 어쨌대나.

그 공사가 아직 진행중이다. 지금, 밤 12시 30분이 넘은 이 시각까지. 불도저는 계속 우르릉 쿵쾅거리며 흙을 밀고 있는 모양이고 삽으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소리, 빗질하는 소리도 들린다. 주인 아주머니 말로는 원래 내일까지 할 공사인데 오늘 안에 끝낸다고 저러고 있댄다.

이 동네에 새벽에 일 나가시는 분들 많다. 물론 화이트 칼라 아니다. 남들 쉬는 토요일에도 몸 써가며 일하는 분들은 단잠이라도 주무시고 나가야 하는거 아닌가. 공사하시는 분들 힘들거라는 것도 이해한다만, 그렇다고 이 밤에 저리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가며 끝내야 하는 거냐.

DVD를 빌려왔는데 시끄러워서 볼 생각도 못하고 있다. 책도 안 읽힌다. 잠을 잘 수도 없다. 대체 뭘 해야 하는건가 이럴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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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2004-09-04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때는 제 생각을 하심이... (느글느글... 퍽!)
그나저나 야밤에 공사 정말 싫어요. 우리 동네도 무슨 동사무소 건물인가 새로 짓는다고 밤마다 난린데 정말 시끄러워 죽겠어요. 근데 님은 참 착하시네요. 새벽부터 열심히 일 나가시는 분들을 걱정해주시고... 저는 제가 잠 못자는 것만 생각하고 승질 팍팍 내는데^^

urblue 2004-09-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다지 착한 건 아니구요, 좀 안면있는 분들이 있다보니...
아침 아홉시부터 또 땅 파고 있습니다. 발바닥이 덜덜거리네요. 집에서 쉴까 했는데 아무래도 하루 종일 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urblue 2004-09-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제 밤에 초 켜 놓고 있었는데, 은은한 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

로드무비 2004-09-0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딜 나가시려고요?^^

비로그인 2004-09-04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고요?^^

urblue 2004-09-0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다운받아 놓은 <지킬 앤 하이드> 다시 보고, CD로 조승우와 류정한의 음색을 비교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소음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말이죠. 그런데 나가려고 하는 지금은 소음이 딱, 사라져버렸네요. 점심 시간인가.
영화 보러 갑니다. 보고싶은 영화가 두편 있는데 극장이 멀어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었죠. 집이 시끄럽다는 핑계로 몸을 좀 움직여 보려구요. 다녀오겠습니다. (__)
 
 전출처 : 바람구두 > 비폭력주의 ― 연민의 과학

2001년 바야흐로 21세기의 첫 해를 맞이한 인류는 더 이상 '묵시록의 네 천사' - 원래는 성서의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말이지만, 1916년 이바녜스(Vincente Blasco Ibanez)의 소설에서 흰말은 전쟁, 붉은 말은 학살, 검은 말은 굶주림, 푸르스름한 말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 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리란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의 21세기, 그 첫해가 미처 저물기도 전이었던 9월 11일의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의해 붕괴되었고,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죄 없이 희생당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21세기가 결코 20세기와 다르지 않으며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20세기에 미처 풀지 못했던 산더미 같은 과제들이 누적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이제 그 1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의 염려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1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가 반대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라크로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걸프전' 그리고 계속되는 미국의 이라크 경제 봉쇄 조치로 이라크에서는 오늘날 6분에 1명 꼴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그 동안 최소 75만 명에서 1백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미국의 공습과 영양실조, 의약품 고갈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라크 정부측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이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난한다. 물론 모든 근본주의는 인류의 화합에 있어서 가장 나쁜 대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자행된 인류에 대한 모든 범죄가 갖은 도덕적 명분을 들이대었던 것처럼, 미국이 신세기에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란 것은 결국 미국 근본주의와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들은 시계가 12시를 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황급히 촌각을 다투어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들은 종이 울린 뒤에 해결하기엔 너무 늦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정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 무엇이 옳고 선한 것인지 판단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는 먼저 윽박지르기에 앞서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죽음으로 항거하는 방법 이외에는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허락하지 않은 그들의 오만에 있었음을 깨우쳐야만 한다. - 바람구두

비폭력주의 ― 연민의 과학

마이클 네이글러(Michael Nagler)

  독일의 덴마크 점령통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하운동은 잘 조직되고 대담한 것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함으로써 점령당국을 심히 곤혹스럽게 하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덴마크인들은 나치의 유태인정책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 정책은 1943년 가을 어느 날 절정에 달하였는데, 독일 함대가 덴마크 거주 유태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코펜하겐 항구로 들어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 모르게 누군가가 지하조직에 이 사실을 알렸고, 밤새 7천2백 명의 유태인들 ― 사실상 덴마크 유태인들의 전부에 해당하는 ― 이 대기중인 함대의 코밑에서 중립국 스웨덴으로 빼돌려졌던 것이다. 고기잡이배들과 온갖 뜰 것들로 구성된 잡다한 소형 선단은 험한 바다 위에서 솟구치고 떠밀리면서도 이튿날 아침까지는 혼잡과 배멀미에 지친 승객들을 스웨덴으로 데려다놓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스웨덴 국왕은 유태인들에게 망명을 허가해주고 싶었지만, 나치의 존재에 겁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국왕은 스웨덴의 중립성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그때 덴마크의 저명한 물리학자가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그는 유태인들이 처한 딜레마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국왕에게 조용히 자신의 말을 전달하여, 만일 유태인들에게 망명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 자신 자진해서 나치의 손에 스스로를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그 저명한 물리학자는 닐스 보어였고, 스웨덴 국왕은 즉각 유태인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내가 보어의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여기에서 그의 과학과 그의 인간적인 용기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어는 양자물리학에 있어서 '코펜하겐 해석'의 배후에 있는 천재였다. 아인슈타인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 해석에 따르면, 새로운 물리학의 성과는 실재의 본질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며, 실재는 지극히 이상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물리학의 우주와 초시간적인 신비체험가의 우주 사이에는 매우 흥미롭고 암시적인 평행관계가 있다. 상호연관성에 대한 깊은 감각과 물질에 대한 의식의 우월성은 ― 간접적으로 ― 비폭력주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견고한, 덩어리진, 딱딱한, 꿰뚫을 수 없는, 움직이는 입자들"로 구성된 뉴턴의 우주는 필연적으로 지금 우리가 벗어 나오고자 애쓰는 자연과 생물들에 대한 폭력의 세계를 초래한다.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과 매스 미디어의 공식적 과학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물질적 역학의 세계는 ― 물질은 제한되어 있고, 우리를 만족시키는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 희소성의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관은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폭력을 낳는다. "내가 너에게 해를 끼쳐도 나 자신을 포함한 보다 큰 전체는 해를 입지 않는다. 또한,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충분히 주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아래에 있는 그림은 그 그림이 창조된 세계가 갖고 있는 중심적 모순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다. 이 그림은 1768년에 조셉 라이트라는 화가가 그린 것이다. 그때는 산업시대의 시초로 서구세계에서 땅과 인간의 오래된 연결의 전통이 결정적으로 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우리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떠돌이 과학교사인데, 그는 한 개의 진공펌프를 홀린 듯한 구경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펌프질을 통해 유리로 된 새장에서 공기를 빼고 있다. 그리고 새장 안에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사람들은 새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말해 새장 안에 공기가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기술의 힘에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관객으로서 우리가 달리 받는 인상은 무엇인가?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진정한 극적 흥미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펌프와 공기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한 남자어른이 작은 새 한마리를 죽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이 드러내는 진짜 이야기는 청중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 과학자와 당혹해하는 아이들 사이의 대조에 있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그들은 '다만 어린애들일 뿐'이며, 그래서 어른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자연에 손상을 가할 때 우리들에게 경고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민감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진짜 비극은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가슴깊이 깨닫고 있는 사람들 ― 라이트의 그림 속의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 ― 을 우리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라이트가 진공펌프의 힘을 과시하는 근대기술의 사제 ― 그럼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내세우는 ― 를 묘사했을 때 시작되었던 호(弧)의 다른 쪽 끝에 서있다. 근대기술 ― 기술주의라고 해도 된다 ― 은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 중 일부는 그 결과에 너무나 기막혀하고 있다. 우리가 환경에 대하여 저질러놓은 것은 1768년이나 1968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민감성으로써 생명을 지켜보고, 가장 계몽된 어른들의 지혜로써 생명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과학은 지난 백년 동안 뉴턴의 '원시적 입자들'의 세계로부터 뛰쳐나왔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그와 보어의 놀라운 발견을 통하여 물리학은 이제 사물을 물질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의식에 관여하는 에너지의 변화로 본다.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우리의 존재에 함께 관여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상호연관성에 대한 관점 ― 뜻밖에도 우리 문화의 가장 이른 신화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 이 오늘날 비폭력주의와 에콜로지의 배후에 있는 상호연관성의 윤리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직관을 우리의 합리적인 마음으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 보어를 자기의 동포가 위험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기를 거부한 인간 보어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근거가 거기에 있음을 느낀다.
  
1938년 여름 스웨덴으로 피신하기 직전 닐스 보어는 코펜하겐에서 열린 한 물리학자들의 국제적 모임에서 연설을 한 바 있다. 이 '양자역학의 할아버지'는 그의 유명한 상보성이론으로 일반청중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 이론은 인간이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어서 '외부에 있는'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두가지 상호배제적인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드는 예로서, 빛의 광자 또는 그밖의 다른 양자 실체는 입자도 파동도 아니지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자나 파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날 이 국제물리학회의에서, 그는 자신의 그 유명한 개념을 전자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에 적용시켰다.

  우리는 진실로 다양한 인간문화들이 서로서로에게 상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각각의 문화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있어서 조화로운 균형을 대변하며, 그러한 조화를 통해서 인간 삶의 내재적 가능성이 발전하여 무한히 풍부하고 다양한 새로운 삶의 모습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발언에 독일대표들은 퇴장하였다. 결국, 그 독일인들은 우선적으로 나치당원들이었고, 그 다음 순서로 '과학자들'이었던 셈이다. 보어의 발언이 드러낸 세계관은 나치당원들의 가치에 완전히 적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불관용(不寬容)이라는 나치의 교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적인 차이들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자연적 계획의 일부이고, 개별 민족과 공동체와 개개인들은 저마다 사물의 질서 속에서 자기의 소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누구라도 하나의 전체 가족으로서 자기실현을 이루려면 서로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아이디어는 파시스트들에게는 쓰디쓴 독초였다. 모든 유정물이 저 나름의 귀중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파시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치의 유럽점령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야만적인 폭력을 쓰려는 의지에 결부하여 몇 가지의 불쾌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존재에 대한 이미지이다. 히틀러는 이 점에 있어서 노골적이었다. 그는 어느 날 윌리엄 쉬러 ― 히틀러와 간디 두 사람 모두를 실제로 잘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다 ― 와 점심을 함께 나누며 자기가 거둔 성공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사람은 저마다 가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엔 그 가격이 매우 낮다는 걸 알면 놀라실 겁니다."
  인간존재를 하찮게 보는 데에서 폭력이 나오고, 인간존재를 높이 보는 데에서 비폭력이 나온다. 폭력은 우리를 갈라놓는다. 비폭력은 우리들 모든 사람들 사이의 신비스러운 통일성 ―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숨겨져 있는 영광이다 ― 에 직접 호소한다.

  나치 과학자들을 쫓아냈던 닐스 보어의 발언은 1938년 당시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그는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획일성을 통한 분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질서개념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았다. 파시스트들은 오직 하나의 민족과 정치질서만이 ― 그러니까, 오직 한사람만이 ― 가치있고, 진정하며, 깨끗할 뿐이고, 나머지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열등하고 위험한 것이어서 만약 그것이 '유일한 올바른 길'에 복종하지 않으면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는 헤겔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고 부른 아이디어였다. "인간 삶의 내재적 가능성이 스스로 발전하여"라고 한 보어의 표현을 보라. 이 표현은 나중에 또 한사람의 북유럽인인 요한 갈퉁이 이어받아 비폭력주의에 대한 오늘날 잘 알려진 정의가 되었다. 갈퉁에 의하면, 비폭력은 "각 개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의 실현"을 돕지만, 그와 반대로 폭력은 그러한 실현을 방해하는 힘이다.

  이러한 정신적 맥락에서 달라이 라마는 1993년 유엔 NGO 인권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창조적 잠재성을 사용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특성의 하나를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 우리 사회의 가장 재능있고, 헌신적이며, 창조적인 구성원들이 인권남용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은 인권침해를 통해 좌절되는 것입니다.

  나는 느낌과 개념 사이에 연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태초이래 가족과 사회와 행성을 유지시켜온 정신적 깨달음의 깊은 원천인 연민의 마음과 모든 생명을 그 다양성 속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 개념 사이에는 연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이라는 개념의 합법적 연장으로서 우리는 문화적, 개인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겉보기에 모순적인 이 개념은 비폭력주의와 나란히 간다. 말하자면, 그것은 연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 인간의 영혼의 특성을 좀더 분명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람들 사이의 너무나 커다란 차이에 우리는 당혹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변별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의 목표, 즉 세계의 완전함을 향하여 각자의 고유한 재능에 따라 이바지하는 데에 모두 통일되어 있다"라고 랍비 에이브럼 이삭 쿠크가 말했다.

  인간가족은 50억 개인들을 넘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각자는 측량할 수 없이 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적인 통찰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안락사운동, 사형제도의 부활, 기괴한 인권침해의 만연, 가족의 쇠퇴,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기르는 부양체계의 쇠퇴 ―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삶의 신성함을 손상시키는 것들이다.

  언제나 비폭력을 주창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간디에게도 생명은 신성하고, 무한히 값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명제였다. 모든 생명의 총화가 어떤 점에서는 주어진 개별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일지라도, 또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거스틴이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것들은 똑같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각각의 것은 좋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어우러짐도 매우 좋다."

  전통적인 힌두교의 신자로서 간디는 견고한 형이상학적 기초를 갖고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금언의 하나를 즐겨 인용했다. "작은 파편 속에 우주가 있다." 양자물리학자나 신비가들, 그리고 세계의 여러 정신적 전통에서, 또 우리 모두의 좀더 성찰적인 순간에 이러한 비젼은 되풀이하여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살생을 금하는 명령 이상의 것이다. 그 믿음의 진정한 가치는 살생을 해서는 안되는 적극적인 근거를 말해주는 데 있다. 즉, 각각의 개인으로 된 작은 소우주는 전체 세계질서의 씨앗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DNA라는 우스울 정도로 작은 조각에 기초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서 우리 각자는 하나의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정보' ― 믿음, 통찰 ― 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민족적, 준민족적 증오심으로 찢겨있는 이때, 이러한 진리는 되풀이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민이라는 낱말은 문자 그대로 타자와 고통을 함께 하고, 느낌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아픈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성을 고립, 차단시켜 그 속에서 죽게 하는 것보다는 타자와 고통을 나누면서 인간성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히브리말에서, 연민에 해당하는 말은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낱말의 복수형으로 되어있다.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에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연민이야말로 이 시대의 급진주의"라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비폭력주의는 연민의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녹색평론』, 제43호, (1998년 11-12월호)>

필자/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명예교수. 1980년대 초 평화 및 갈등연구 프로그램을 설립하여 그 이후 비폭력주의에 관해 강의해왔다. 이 글은 YES!:A Journal of Positive Futures 1998년 가을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비폭력은 '현실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어쩌다가 한번씩 행하는 말쑥한 습관이 아니다. 비폭력은 하나의 과학, 삶의 방식, 세계관 ― 무엇보다도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녹색평론 홈페이지 - http://www.greenreview.co.kr/
<200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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