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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이 온전히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 이젠 상식에 속한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어떻다고, 그 본성을 교화하면 어떻게 된다고 옛 성인들이 뭐라 말씀하셨거나 말거나 간에 대부분의 인간은 악한 면과 선한 면을 동시에 가진다는 걸 학문이 인정하고,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보여준다. 또한 주위에서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다. 흑과 백, 동전의 앞면과 뒷면, 얼굴 위의 마스크.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딱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순발력은 놀랄 지경이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자. 가끔은 내 안에 이런 악한(혹은 선한?) 면이 있었나 싶어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니 인간의 영혼이 희거나 검은 것이 아니라 회색이라고 해도 억울할 일은 아니다. 색상표를 찾아보니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gainsboro부터 dark slate gray까지 몇 가지 회색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흑과 백의 농담을 조금만 달리하는 것으로도 무수한 서로 다른 회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중 비교적 흰색에 가까운 쪽에 대부분 인간의 영혼이 위치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나쁜 마음이 들거나 순간적인 유혹이 생기거나 할 때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필립 클로델은 좀 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개새끼도 성자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완전히 시커먼 것도 없고, 완전히 새하얀 것도 없어. 있는 건 회색뿐이야. 인간들도, 그들의 영혼도, 다 마찬가지지. 너도 회색 영혼이야. 우리 모두처럼 빼도 박도 못할 회색이지.”
빼도 박도 못할 회색이라니. 이 말은 회색 내에서의 다양한 차이, 흰색에 가까운 밝은 회색과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회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어차피 회색인 바에야 위선을 떨거나 위악을 부리면서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는 것일까. <회색 영혼>을 읽고 나면 필립 클로델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아니, 부정하고 싶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어서 몸서리가 나고 한숨이 새어 나온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17년 겨울, 전쟁이 끝나 갈 무렵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이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름다운 소녀 ‘벨 드 주르’가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관인 화자가 이 ‘사건’을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 아닐 뿐더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경찰관의 기록은 ‘사건’을 중심으로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의 내면을, 그들의 회색빛 영혼을 하나하나 드러내가는 과정일 뿐이다. 처음부터 탐욕과 게걸로 얼룩진 성정머리를 드러내는 미에르크 판사와 마치예프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혼자만의 지옥을 끌어안고 살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매력적인 웃음을 잃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있고, ‘성채’에서 외로이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전직 검사 데스티나 같은 사람도 있다. 한편 화자인 경찰관 역시 비밀을 간직한 회색 영혼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마치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스름한 계단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독자는 위를 쳐다보면서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한다. 어서 올라가 확인하고 싶다. 그러나 곧, 시선은 위가 아니라 계단을 따라 이어진 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위선적이고 위악적인 인간 영혼의 여러 모습이 다양한 회색의 계조로 새겨져 있다. 때때로 고개를 돌리고 싶고, 그냥 아래로 내려가고도 싶다. 하지만 계속 위로 잡아 끄는 힘을 뿌리칠 수 없다. 결국 마지막 계단에 이르렀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벽에 새겨진 모습을 보는 것, 그리하여 인간 존재 자체가 회색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계단을 오르는 목적이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