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니예프의 생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이희원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대학 진학 시 노어노문학과를 택한 것은 좀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학 쪽으로 가고 싶긴 한데, 영어 싫어, 독어 싫어, 일어 싫어…… 하는 식으로 지우다 보니 남은 것이 중국과 러시아뿐이었다는 슬픈 얘기다. 그 중 중국 문학은 루쉰(이라고 해 봤자 『아Q정전』)밖에 모르는데 반해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리키, 체르니셰프스키, 솔제니친 등 러시아 작가들은 비교적 친근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시쳇말로 먹고대학생이었던 나는 대학 시절 내내 딴전만 벌였다. 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어학은 일찌감치 포기. 누가 러시아어를 물으면 내 전공은 러시아어가 아니라 러시아문학이라고 주장했더랬다. (잘도 그런 흰소리를. 언어를 모르고서 문학이 가능하다더냐.) 실제로 문학 수업을 좀 더 열심히 듣긴 했다. 그러나 심지어 푸슈킨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도 읽지 않은 채 졸업한 걸 보면 역시 먹고대학생이 맞았다.

 

이 엉터리 (과거의) 러시아 문학도는 실은 러시아 문학이라는 걸 잘 모르겠다. 한 지역에서 (여러 세대가 되었든 동시대가 되었든) 동일한 언어로 씌어진 글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는 비슷한 특징을 지니는지, 그런 걸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닐뿐더러 적은 대로 핵심을 추출해낼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푸슈킨으로부터 시작된 러시아 리얼리즘의 흐름을 배웠던 것도 같지만, 개별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밝고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푸슈킨, 그로테스크한 풍자가 고골, 고독과 페이소스의 레르몬토프, 박애주의자이자 엄숙주의자인 톨스토이, 모순의 집합체라 할 도스토예프스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체호프, 선동가 고리키 등 재미있게 읽거나 좋아하는 작가들도 여럿이지만, 그들에게서 다른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러시아적 특징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말문이 턱 막혀버리는 것이다. (등장 인물의 이름이 길다, 어렵다 이런 얘기는 빼 주시길.) ‘리얼리즘’, ‘비판 정신정도를 떠듬떠듬 읊조릴 수 있을 테지만, 그게 과연 러시아 문학만의 특징일까.

 

부닌은, 무슨 이유인지 머리 한 구석에 확 박혀 있는 작가이다. 수업 시간에 언급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전혀 기억이 없고 어떤 작품을 썼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희한하게 이름은 친근해서 꼭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설마 이름이 쉬워서?) 그런 작가의 책이 나온다는 소식, 게다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명맥을 잇는 마지막 작가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소개말에는 꽤나 구미가 당긴다. (노벨상 수상 작가라는 사실조차 이번에 알았다만.) 내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문학이라는 걸 이 참에 느껴보겠다는 야심찬 각오까지는 아니지만 하여튼 제법 기대를 한 작품이다.

 

과연, 곳곳에 러시아에 대한 묘사와 사색이 들어 있다. 부닌은 유럽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멸에 대한 러시아적 열정이라든가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비롯되는 러시아인들의 우울과 냉담, 축제에 대한 러시아의 요구(하지만 정말로 우유가 흐르는 강과 끝없는 자유와 축제를 바라는 오랜 열망들이 러시아 혁명정신의 진짜 근원이었단 말인가?” -139), 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버려진 영지와 방치된 정원(불모의 땅, 황폐함, 몰락 같은 것들은 러시아 영혼에 무엇 때문에 그토록 다정한 위안을 주는 것인가?” -144), 러시아적 자유분방함, 푸슈킨, 고골, 레르몬토프, 체호프 같은 작가들에 대한 경탄과 애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자신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넘치도록 드러난다. 아르세니예프가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읽으면서 감탄하고 2의 푸슈킨이나 레르몬토프가 되기를 염원하는 장면에서는 수많은 러시아의 작가들이 같은 과정을 거쳤으리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푸슈킨을 읽지 않는 러시아인이 드물다고 하던데, 러시아인들에게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막상 책을 읽는 동안에도, 다 읽은 후에도 이 작품이 특별히 러시아적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의 후예로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소년이(1부 카멘카, 삶의 시작) 조국으로서의 러시아를 느끼기 시작하고(2부 나의 조국 러시아),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며(3부 숭고한 사명, 문학), 성장통을 겪으면서 방황하고(4부 청춘, 그 찬란한 이름), 사랑을 하는(5부 사랑, 시들지 않는 기억) 과정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으로 바꿔 놓더라도 그대로 통용될 법하다. 나는 차라리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떠올렸다.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묘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적 특징보다 보편성이 먼저 느껴지는 이유는 러시아라는 배경 위로 삶과 문학과 사랑이라는, 인류의 보편 주제에 관한 성찰이 도드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릇 거장이라 함은 이렇듯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서 소재를 취하더라도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 이쯤에서 나는 또 흰소리를 늘어놓고 싶어진다. 내가 러시아 문학만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읽은 모든 러시아 작가들이 거장인 까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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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7-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전 부닌은커녕 예브게니 오네긴(사람 이름인거에요?), 체르니셰프스키, 레르몬토프, 이런 분들 하나도 모르는걸요. 얼블루님 러시아문학 전공 맞는데요, 뭘.
(소근소근. 러시아적 특징은 소설이 무지하게 길다, 아닌가요? -_-;; 쿨럭.)

sudan 2006-07-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읽은 모든 러시아 작가들이 거장이라는 말을 다시 잘 생각해보니, 러시아문학에 대한 얼블루님의 애정이 확 느껴져요.

비로그인 2006-07-1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요 러시아문학전공이라니 넘 멋져요..^^
그냥 넘어갈까했는데 블루님의 애정에 고무받아 읽어봐야겠어요..

urblue 2006-07-1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는 건 뭘 두고 하는 말씀이신지. ^^;
근데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싫으셨다고 하셔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수단님, 뭐 특별히 애정이랄 것까진 아니구요, 그냥 관심만 보이는 척입니다.
글구요, 몇몇 아자씨들이 좀 길게 쓴 몇 권 빼면, 푸슈킨이나 체홉이나 고골이나 단편도 많이 썼다구요.

nada 2006-07-1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어 전공이셨구나... 워낙 할량할량 읽어서 다른 건 모르겠지만.. 딱히 러시아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는데, 그것이 모두 거장의 작품이기 때문이었군요!! (흰소리 댓글...- -;;)

비로그인 2006-07-1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문학 전공하신거요..^^ 취미로 러시아어를 배운 신랑이 늘 그러죠 러시아어는 정말 우아한 언어라구요..ㅎㅎ
아 그리고 싫다고 한게 아니라 힘겹게 읽었다는..-_-;;

urblue 2006-07-1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러시아어가 우아한 언어인지는 잘... 뭘 제대로 배웠어야 말이죠. ㅎㅎ

꽃양배추님, 흰소리에 흰소리로 답하시는 센스! ㅋㅋ

로쟈 2006-08-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닌 자신이 '러시아'와 좀 무관한 작가입니다. 한 러시아 비평가가 한 얘기인데, 그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언제나 '비동시대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