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지 5일.
이제 대충 갖출 것은 갖췄고, 어제는 애인도 쉬는 날이라 책장을 정리하자고 합의를 봤다,기보다는 둘 다 그걸 제일 먼저 하고 싶어했다. 이사하는 사람들이 꽂아놓은 대로, 여기저기 마구 섞여 있는 책들이 보기 싫었던 까닭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여기저기 갈라져 있고, 뭐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다.
일단 제일 위칸을 비우기 시작. 바닥에 책을 쌓아두고 흩어져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불러 모은다. 밑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까지 갔다가 옆칸으로 이동하여 스페인, 남미를 시작으로 위쪽으로 미국, 영국, 일본, 한국 순으로 올라간다.
여기까지는 주로 내 영역. 이제 반대편은 거의 애인의 영역이다. 오른쪽 좁은 칸으로는 한국 문학, 시집, 예술 등이 오고, 그 옆칸부터 역사, 미국, 세계화, 전체주의, 고전, 정치학, 사회학 등등...
애인은 대학 때 생활도서관에서 일을 했는데, 나름대로는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내 의견도 있고, 책 자체가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칸도 안 맞고 하여 이래저래 고심하다 에라 모르겠다, 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뒤 쪽에는 과학, 환경, 생태 관련 책들이 한 칸, 만화와 동화책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그러고 나니까 겨우 한 칸만 남는다.
책장 정리를 끝내기도 전에, 난 뻗어버렸다. 거실 바닥에 누워서 애인이 마지막 정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 쪽 방을 끝내 놓고 애인은 옆 방으로 건너갔다. 책장이 모자랄 듯 하여 옆 방도 책방으로 쓰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쓰던 책상과 책꽂이를 들고 왔다. 우리끼리 부르기로는, 이 방은 '비싼 방', 옆 방은 '싼 방'. 이게 싼 방이다.
이 쪽은 애인이 업무상 보는 책들과 CD들. CD도 모아 놓고 보니 책장 가득인데 따로 CD장을 사면 또 짐이 될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정리를 끝내놓고 나가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데 애인이 묻는다. "그래도 뿌듯하죠?" "아뇨."
너무 힘들어서, 이제 책 안 사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솔직히. 애인이 부모님 댁에 둔 책이 1000여 권이라는데, 그걸 다 가지고 올 수도 없을 뿐더러, 일부만 들고 와도 책장 정리 또 해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
책장 정리 후의 결론.
앞으로는 책 안 사고, 다 읽은 책은 마구 방출하고, 책을 줄여야겠다. 진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