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인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건물 근처에 왁자하니 사람들이 몰려 있다. 괜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입구를 기웃거리는데, 문 양쪽에 선 남자와 여자가 나를 가로막는다.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보여야한다나 방명록을 써야한다나. 귀찮다.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살짝 모퉁이를 도니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른 입구가 보인다. 옳지, 저기로 들어가면 되겠구나, 하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거긴 입구가 아니에요. 저 앞으로 가세요.” 에이, 역시 귀찮아.
그저 터벅터벅 걷다가 후배 C를 만났다. 같이 밥을 먹기로 하고 막 움직이려는데 눈앞에 선배 S가 보인다. C가 S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뭔가 얘기를 시작한다. 즐거운가 보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짐짓 딴청을 피운다. S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C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나를 흘깃거리는 S와 눈이 마주친다. 어쩐지 절박한 눈빛,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하지만 난 할 말이 없다. 바로 외면한다. 드디어 C가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인사도 건네는 둥 마는 둥 하고 앞장서 걷는다.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승용차 한 대가 눈 앞으로 들어와 정차한다. 거긴 주정차 금지 구역인데. 게다가 일방통행로인가보다. 반대편에서 버스가 들어오더니 난폭하게, 위협하는 듯 승용차 바로 앞에 멈춰 선다. 부딪히는 줄 알았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놀란 모양이다. “버스가 나빠. 저 차가 잘못했더라도 저렇게 위험하게 운전하면 안 되지.” 딱히 후배에게랄것도 없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승용차의 차창이 내려가고,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오고 가는 고함과 대거리. 이 남자, 정말 열 받았나 보다. 그대로 차를 움직여 버스에 받아버린다. 참, 성질머리하고는. 남자와 여자가 내리고, 버스 기사도 내리고, 길 한복판에서 드잡이가 벌어진다. 몰려든 사람들로 웅성거린다. 나와 C는 길을 건널 생각도 하지 않고 돌담에 기대 서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문득 시선을 돌리다 웬 운동모자를 쓴 남자가 승용차 안으로 상체를 구부리고 있는 것을 본다. 와중에 좀도둑질이라니. 쯧쯧 혀를 차려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칼, 그것도 제법 큰 식칼이 눈에 들어오자 순간 숨이 멎는다. 그새 싸움이 끝났는지 승용차의 남자가 차로 돌아오다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운동모자를 알아챘다. 이건 또 뭐야, 너 잘 걸렸다, 하는 표정. 어, 칼 들었는데.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 속에 스치지만 내가 어쩌기도 전에 운동모자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고 남자가 푹 주저앉는다. 저 남자 인상착의를 봐 둬야 해. 그렇지만 모자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차림새라도. 눈길은 남자를 좇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하려는 찰나, 내가 보고 있었다는 걸 그가 알아채면 어쩌나, 긴장이 확 피어 오른다.
난데없는 음악 소리.
휴대폰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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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