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애인과 우리 엄마에게 인사하러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라 고속버스는 조금 밀렸다. 애인은 전날도 야근을 했고, 차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인사드리러 간다는 긴장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단다. 참.

 

집에 6시가 넘어 들어가서 잠깐 얼굴만 보고 바로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에는 작은아버지와 고모가 기다리고 계셨다. 역시나 의례적인 말이 몇 마디 오간다. 연세 많으신 고모는 먼저 띠부터 물으시더니 둘이 띠가 맞는다 하셨고, 작은아버지는 둘만 좋으면 된다고 하셨고, 엄마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공부만 열심히 한 사람같다,는 말은 엄마의 칭찬. 당신 딸내미도 그렇다고 믿는 분이니까.

 

맛있는 밥을 배가 찢어져라 먹은 후에 작은 집으로 갔다. 일 때문에 식사하러 나오지 못한 작은어머니는 애인을 보더니 너무 어려 보인다고 하신다. 심지어 20대 같다나. 그럼 제가 더 나이들어 보여요?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충격적인 대답. 헉. 큰일이로군.

 

엄마는 집으로, 나와 애인은 내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친구 동생이 하는 바에 갔는데, 작년에 만났을 때까지도 내게 누나는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라고 했던 놈이 이번에는 누나도 이젠 늙는구나. 한다. 흑흑. 나 진짜 늙은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한참 수다를 떨었다. 결혼한 친구가 시어머니 흉보고(그 친구 신랑은 없었다.), 아직 결혼 안 한 다른 친구들 얘기를 하면서 떠드는데, 애인은 옆에서 웃기만 한다. 좀 심심하지 않았을까.

 

집에 돌아와서 애인의 잠자리를 봐주고 난 엄마랑 함께 누웠다. 집을 구했다는 거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그런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집에 들이지 말아라.

실은 애인도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는 터라 이사하고 나면 합칠 생각이었다.

? 엄마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결혼 전에 같이 사는 건 엄마는 별론데.

거부감이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한 바다. 하지만 동생도 결혼 전에 올케랑 같이 살기 시작했으니까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네도 먼저 살았잖아. 그땐 그러라더니.

아들은 괜찮지만 딸은 아깝잖아.

엄마!

그러다가 남자 마음이라도 변하면 어떡하니?

 

하하하. 엄마는, 내 마음이 먼저 바뀔지도 모른다는 건 아예 생각도 안 하시나 보다. 남자가 변해서 여자를 버리면 여자 신세만 망친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딱 예상한 반응이 나오니 오히려 엄마가 좀 귀엽게 보인달까. 서울서 10년 넘게 혼자 살고 있는 서른 넘은 딸을, 아직 세상 물정 제대로 모르는 순진한 소녀로 여기시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애인도 부모님께 대강 같이 살겠다는 뜻을 비췄더니, 그러라고 찬성하는 반응이 나왔단다. 하지만 만약 애인의 여동생이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게 쉽게 허락하실까. 대한민국의 부모란 대개 이렇지 않을까 싶다. 아들은 되고 딸은 안되고. 하지만 그 아들이랑 결혼하는 혹은 같이 사는 여자는 누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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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2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치세요.^^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여차하면...=3=3=3

urblue 2006-02-2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역시 그런거죠? 나중에 제 딸이 그런다고 하면, 전 두말않고 허락할래요. (과연...)

로드무비님, 여차하면... 도망가야하나요? ㅋㅋ

비로그인 2006-02-2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멀 것만 같았던 결혼이 착착 진행되는 군요
양부모님께 허락받은 거 우선 축하드리구요.
저희는 같이 안 살아보고 결혼한다고 남편친구들이 다 기절했답니다..ㅎㅎ
합치실 날 그럼 얼마 안 남은거네요..^^

반딧불,, 2006-02-2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씀에 백만표^^(=3=3=3333)

그렇죠 뭐. 제 친동생이라면?? 저도 잘...ㅠㅠ)

urblue 2006-02-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엄마는 뭐, 제가 하겠다고 하면 완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으실거라 믿고 있습니다. 아마 4월이면 같이 살게되겠지요. 살아보고 결혼하는게 맞는 일일텐데, 여기서는 아직도 멀었어요.

반딧불님, ^^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뭐.

울보 2006-02-2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살아보고 결혼하면 좀더 나은결혼생활을 할까요,,ㅎㅎ

urblue 2006-02-2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살아보는게 나을 것 같긴 한데요, 제 경우엔 '살아보고 한다'가 아니라 '할 건데 미리 산다'니까 좀 다르겠죠. ^^

sudan 2006-02-2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딧불님 따라) 로드무비님 말씀에 올인.

urblue 2006-02-2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알겠습니다.

딸기 2006-02-2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엄마한테 말 안 하고 같이 사는 거 아닌가요?

클리오 2006-02-2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희 어머니도 제가 결혼할 때까지 조신하게 지내신줄로만 아십니다. 부모님 맘편한게 저 편하려니.. 싶었지요.. ^^

urblue 2006-03-0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이름 또 바꾸셨군요. ^^ 엄마한테 말 안 하고 같이 살면 된다는 말씀이신거지요?

클리오님, 그렇군요. 이사하고 나면 엄마가 한번 다녀가신댔는데, 그 후에 들어오라고 할까봐요, 그럼. ㅎㅎ

urblue 2006-03-0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면서 뭘 걱정하십니까. ㅎㅎ
실은, 혼자 오래 살아서인지, 제가 뭔가 결정한 일에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거의 못 참아하는 성격입니다. 아니, 못 참는다기보다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군요.
어떻게 할지는 이미 결정한 거고, 나름대로 잘 해결할거니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신경써주시는 건 고맙사와요. 홍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