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TV 책을 말하다의 녹화를 방청했다. 리영희 선생과 임헌영 선생의 대담집 <대화>가 선정도서라길래, 두 분과 진중권씨가 나온다길래 방청 신청을 했고,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TV 녹화라는 걸, 봤다.
의외로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리영희 선생 때문이 아니라 진중권씨 때문에 온게 아닐까 싶은 생각. 카메라에 절대 안잡히는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실패. 녹화는 별다른 NG없이 두 시간 정도에 끝났다. 사실 덜렁 얇은 방석 하나 올려진 딱딱한 나무에 2시간 넘게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건, 지금의 내 허리에는 약간 무리였다. 10시가 넘어가면서부터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한 30분만 더 했더라면 중간에 그냥 일어서야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리영희 선생의 책은 하나도 안 읽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제목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대화>가 출간되었을때 당장 보관함에 담긴 했지만 막상 사게되지 않는 책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 리영희 선생에 대해 아는 거 하나도 없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간다는게 겸연스럽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알아보지 하는 생각도 했다. 책도 준다잖아. -_-
리영희 선생은 비교적 건강해보이셨다. 중풍으로 우반신 마비까지 갔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럭저럭 거동은 하시는 모양이다. 다만 앉아계시는 내내 오른쪽 손과 팔이 떨렸다. 말씀을 하시다가도 잠시 맥락을 놓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분에게 사인받겠다고 달려들다니. 괜찮을 때까지만 사인을 하신다고 했지만 보기에 좋지 않았다. 나나 친구는 아예 줄 설 생각도 안했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방청객 질문 내용을 미리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대담이 진행될수록 그 질문들이 전혀 엉뚱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와 PD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질문들을 뽑은거야, 선생의 책들을 읽기는 한거야, 이러면서 혼자 궁시렁댔다. 아니나달라, 방청객들의 질문에 선생은 뭘 당연한걸 묻냐, 기막혀 말이 안나온다,의 반응을 보이셨다. (질문 내용은 말 안한다.)
선생이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당신께서 말씀하셨듯 '기능인'이 아니라 '지사(志士)'의 모습이다. 그러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식인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말을 선생은 받아들일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우국지심 내지는 도덕적 올바름을 가지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만으로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대화>를 다 읽었다. 730여 페이지의 분량, 너무 길다. 선생께서 중풍으로 기억력을 잃지 않았다면, 우반신 마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임헌영 선생과의 대담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 집필할 수 있었다면 아마 분량이 2/3 이하로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를 따라 선생의 삶과 국내 및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 각 사건들에 대한 선생의 입장 등이 길게 나열되고, 상당 부분 중첩된다. 대담 형식이라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반복되는 내용들 때문에 지루해진다.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빛이 되었다는 '지식인 리영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인간 리영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다. 자서전으로서도 그간의 저작이나 시대의 정리로서도 마뜩찮다. 분량에 비하면 이래저래 아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