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전 손택이 별세했다고 한다.
며칠 전, <타인의 고통>을 제법 재미있게 읽었다. 사진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이미지에 대해 연민을 가지며 그저 ‘타인’의 고통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록으로 실린 마지막 글을 보며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1999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실린 <우리가 코소보에 와 있는 이유>라는 글에서 수전 손택은 나토의 코소보 전쟁이 정당한 ‘인도주의적 개입’임을 역설하고 있다.
모든 폭력이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전쟁이 똑같이 부당한 것도 아니다.
어떤 국가가 자국 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그 국가를 힘으로 응징하면 결코 안 된다고?(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대개 이런 양상을 띤다. 국가들간의 전쟁이라는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폭력의 주된 사례는 정부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자국 국경 내부에서 저질러진다. 이런 일에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내전을 통해서, 그것도 ‘낡은 인종적 증오심’을 통해서 이런 살육을 처리하는 것은 받아들일 만한가?(어쨌든 반유태주의도 유럽의 낡은 전통이었다. 사실 반유태주의는 발칸 반도를 휩쓸고 있는 증오심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독일 내의 유태인들을 모두 살육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전쟁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진실일까?(미국 흑인들에게 물어 보라. 남북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전쟁은 단순한 의사소통상의 실수이거나 의사소통의 실패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근본적인 악이 있다. 그래서 정당한 전쟁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쟁[나토의 군사적 개입]은 정당한 전쟁이다. 비록 서투르게 진행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또 다른 부록에서 손택은 9.11 이후 부시가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이것이 실제 전쟁이 아니라 은유에 불과하며, 그러면서도 현실 생활에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강요할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손택의 논리에 따르자면, 부시의 이라크 침공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다.
잘못 읽은 건가. 나중에 좀 더 생각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