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는 작년에 행시에 합격하고 4월부터 지금까지 연수를 받았다. 다음 주에 발령을 받는다고 한다. 그 동안 몇 번 만났는데, 녀석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갑갑해지고 씁쓸해진다.
농담이겠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복지부동의 자세를 견지하겠노라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도 농반 진반으로,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욕먹는거야, 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하는 말이 갈수록 태산이다. 교육 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튀지 마라, 나서지 마라, 바꾸려고 하지 마라' 라고 한다.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어느 부처의 누구는 언제 어디서 이렇게 나서서 입바른 소리 했다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따돌림당하며 힘들어한다, 그러니 너희들도 조심해라, 라고 친절하게, 진지하게, 위협적으로 가르쳐준단다. 지금 후배는 약간 얼어 있다. 진짜로 찍혀서 고생하게 될까봐, 사람들에게 트집 잡히지 않도록, 둥글둥글 원만하게,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다.
어떤 말 끝에, 좀 흥분해서 공무원을 성토하고 말았다. (이놈의 성질머리가 어디 가겠는가. -_-) 그러자 후배가 발끈해서 그들을 변호한다. 힘들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많다, 일부 문제 있는 사람들은 어디나 있는데 어째서 공무원에게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는거냐, 공부한 노력과 업무의 강도에 비해 보수는 형편없이 적은 편이다, 등등.
공무원을 싸잡아서 비난하려는 생각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라도 굴러가겠는가. 다만, 그 조직 자체의 폐쇄성과 보수성,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대한 망각, 특권 의식 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도 후배가 얘기해 준 내용을 바탕으로 지적한 것이다.
후배는 자기 입으로 자기가 본 걸 말해 놓고도, 내 열띤 반응에 놀랐던 모양이다. 그토록 열심히 변호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너도 그 조직에 편입한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이 쓰더라.
지금쯤 녀석도 기분이 좋지 못할 것이다. 사회 경험이 전무한 녀석에게 그렇게까지 말하는게 아니었나. 좀 더 요령있게 대했어야 했을텐데, 한 번 말을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열을 내게 되니, 원. 언제쯤 이 버릇을 고칠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