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이지만, 지난 겨울까지 집에서 달랑 민소매 원피스 한장 입고 지냈다. 출근할 때도, 돌아왔을 때 썰렁한 게 싫어 보일러를 외출로 돌려놓지 않은 채 온도를 약간만 내려놓는 정도였다. 집안은 언제나 후끈할 정도였으니 아마 밖이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11월이 되고 날이 갑자기 차가워지자, 올 겨울도 그렇게 보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집에서 입을 긴 바지를, 2장에 9000원이라는 가격에, 카드 포인트로 주문했고, 지금은 그걸 입고 앉아 있다. 그러고나니 보일러의 온도가 자연 낮아진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긴 바지 산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그랬단다. 나처럼 집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던 이들이다. 한 친구는 내가 말해 준 대안 생리대를 만들어보겠다고도 한다. 한 가정에서 생활비를 절약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잖아, 라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의 선배는 이탈리아에 유학 가 있다. 첫해 겨울은 몹시 지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유학생들끼리 아파트를 얻어 지내고 있는데, 그 곳 아파트는 중앙 난방으로 겨울에도 온도를 18도 이상으로 올리지 않고, 온수가 나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고 한다. 처음엔 집안에서 추운 게 견디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적응이 되어서 괜찮단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 정부의 나르마다 유역 개발 계획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강 개발 계획으로 여겨지고 있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 3,200개의 댐을 건설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 그는 주장한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거주하는 2,500만 명이라는 사람들의 생활이 송두리째 바뀔 거라고. 그들은 대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억지로 쥐어진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는 앞으로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 그들은 잘해야 부농의 소작인이 되거나 도시의 빈민굴로 흘러 들 것이 틀림없다. 댐 건설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그 전기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인도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가진 자들 뿐이다.


우리의 산하 역시 온갖 개발 계획으로 멍들어 가고 있다는 걸 안다.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고, 지자체에 돈을 만들어줄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건 모두 누구를 위한 걸까. 한겨울에는 반팔 차림으로, 여름에는 긴 옷을 입고 지내는 사람들을 위해서?


세계화와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그리고 이젠, 나를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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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12-0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lblue님~ 오늘 택배 도착했어요~(일요일에도 물건 배달해주는 줄 몰랐네요.^^;;) 아이들이 언제 오나 기다리길래 월요일쯤에 올거라고 했는데... 잘 쓸께요.-반죽 만드는 것 때문에 고심중...^^*- 고맙습니다. 스누피 와플이 나오겠어요~

urblue 2004-12-0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쯤 들어가려니 생각했는데, 일요일에도 배송을 하는군요.

맛있는 와플 만드셔서 언제 저도 좀 나눠주셔요. ^^

파란여우 2004-12-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별점 후하게 준 책입니다. 제 리뷰함에 그 때의 감동을 허접하게나마 올렸지요. 개인적으로는 책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얼마나 좋았던지요..흐흐^^

urblue 2004-12-06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리뷰 잘 읽었지요, 물론. 아마 추천 하나는 저일걸요. ^^

많이 쌓인 책들 중에 저걸 골라든게 사실은 책이 얇고 가벼워서였답니다. ㅎㅎ

반딧불,, 2004-12-0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넘 좋습니다.

맞아요..내복 바지 장만했답니다. 전..

사실 제가 추위를 원체 타는지라..다른 집보다 덥게 살거든요.

안되겠다 싶어서 같이 내의 입기로 했답니다. 심각합니다.

춥고 덥고의 문제가 아니고, 사는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듯 해요.

비로그인 2004-12-06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벌 장만하겠습니다. ^^ 그리고 보일러는 낮추고요...네 ^^

urblue 2004-12-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



폭스바겐님, ㅎㅎ 뭐 제가 그랬다는 말씀이지요.

로드무비 2004-12-0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새끼들 때문에 보일러 온도를 낮출 수가 없어요.

저 책 밥헬퍼님께 선물받아놓고 아직 안 읽고 있네요.^^;;

urblue 2004-12-0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뉴스에도 나오던걸요.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니까 어른들은 따뜻하다 느껴도 아이들은 추워할 수 있다구요. 애들 있는 집에선 애들이 우선이죠.

저 같은 어른만 있는 집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로드무비 2004-12-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무슨 엄청난 어른이라구.=3

urblue 2004-12-0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