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오페라에 관심이 있어 찾아보는 게 아니므로, 오페라 관람은 이것이 두번째다. 첫 번째는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처음이나 이번이나 모두 러시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러시아 작품'이기 때문에 본 거다. 더군다나 <스페이드의 여왕>은 저 위대한 푸슈킨의 원작을 바탕으로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것이라고 하니 어찌 아니 볼 수 있을까.

예매를 서두른 덕에 앞에서 셋째 줄 가운데로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5월에 개관한 고양아람누리 오페라극장은 국내에서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장 짧다고 하더니, 과연, 지휘자의 뒤통수가 커다랗게 왔다갔다 하고, 배우들의 표정까지 모두 보인다. 와우.

하지만, 앞자리라서 안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좌우의 자막을 읽기 불편하다는 점. 그리고 배우들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점. 서곡이 끝나고 배우들이 등장하자마자 충격 먹었다. 주인공 게르만은 분명 20~30대일텐데, 무대에 나타난 사람은 60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다! 이럴수가! 흰머리에 자글자글한 주름도 다 보이고 관절이 안 좋은 것도 알아보겠다. 절뚝거리는 힘겨운 걸음걸이라니. 차라리 조금 떨어져서 보는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래서야 몰입이 되냐구요.



공연 자체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보통 오페라는 정적이라 지겹다고 들었는데, 저번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는 거의 뮤지컬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역동적이었고, 이 작품도 움직임이 적지 않다. (다른 오페라를 본 적이 없어 비교는 안 된다만.) 극 중 극 형식으로 삽입된 발레 장면이 경쾌함을 더하기도 했다. 클래식은 책 읽을 때 BGM으로 깔아두는 정도라 거의 알지 못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곡 자체도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 배우들의 노래도 좋았다. 게르만 할아버지가 가끔씩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는게 안쓰럽긴 했어도. 원작에서 리자베타는 가냘프고 가련한 이미지인데, 리자 역을 맡은 배우는 많이 통통하다. 하지만 사랑에 갈등하는 젊은 처자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훌륭했다. 공작부인의 양녀가 아니라 손녀로 설정이 바뀌었으니 풍만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도 쉽게 납득이 간다. 1막은 도입부라 다소 느슨한 감이 있지만 2, 3막은 짧고 호흡이 빨라서 한층 집중하게 만든다. 2막 끝나고는 쉬지 않고 바로 3막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본상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리자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박에 강하게 끌리는 게르만의 심리 묘사는 다소 엉성한 편이라고 할까. 리자가 자살하는 장면은 자살인지 아닌지 모호하다. 아무래도 문학과는 표현 방법이 다르니 기본 줄거리를 알고 이해하면서 봐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자막이 지나치게 엉망이다. 영어 자막을 한글로 옮겼나본데, 대강 뜻만 통하게 뚝뚝 잘라먹었다. 영어를 같이 보여준 것도 좋다만, 한글 자막에 좀 더 신경쓰는게 당연하지 않나. 

다음엔 이탈리아 오페라를 한번 볼까 싶다. 비교 차원에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ng 2007-07-09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저는 오페라는 한번도 못 봤어요~
너무나 저와 무관한 장르같아요 ㅎㅎ

mira95 2007-07-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페라는 한 번도 못 봤어요.. 부러워요~~

chaire 2007-07-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오페라를 한번도 못 봤는데, 니벨룽의 반지만은 꼭 한번 보고 싶어요.

urblue 2007-07-1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그러니까, 뮤지컬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이 작품 전 주에 공연했던 <카르멘>은 훨씬 더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공연도 한번 볼까 싶어 찾아봤더니 최근에 오페라 공연은 별로 없는 모양입니다. 니벨룽의 반지를 하면 저도 꼭 보고 싶어요. ^^

사야 2007-07-1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그 사이 글이 많이 올라왔네요..^^
역동적인 오페라 뮤지컬과 비슷하다니 궁금하네요
저는 주로 이태리오페라를 그것도 처녀적에 좀 봤어요
지금은 신랑이 안 좋아해서 거의 안가지만요.
두 분은 그 취향도 다 맞으시나봐요..^^

urblue 2007-07-11 17:56   좋아요 0 | URL
취향이 다 맞기야 하겠어요. 제가 보고 싶은 건 그냥 예매해버리거든요. ㅋㅋ 보고나서 재밌었다고 하기는 했지만요. ^^ 국내에는 뮤지컬이 붐이라 거의 뮤지컬 공연밖에 없어요. 11월인가 이탈리아 카르멘 공연이 있던데, 그걸루 비교를 삼아볼까 하고 있습니다.

happyant 2007-07-1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벨낀이야기)를 근래에 읽어서,
이 공연에 은근히 눈길이 가더라구요.
부럽사옵니다.

urblue 2007-07-16 11:36   좋아요 0 | URL
스페이드의 여왕도 벨낀 이야기도 재미있죠? 공연 보러 가기 전에 스페이드의 여왕만 다시 읽었는데, 번역이 어찌나 안 좋은지 깜짝 놀랐어요. 옛날엔 그런 책을 잘도 봤구나 싶더라구요. 저 민음사판으로 다시 주문했는데, 저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_-
공연도 보러 다니고 할 만큼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