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렌트를 보고 싶었던 건 오로지 조승우 때문이었다. 조승우 출연 분은 티켓 박스 오픈 후 몇 분 내에 매진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자 더 이상 렌트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공짜로 들어오는 초대권까지 마다할 건 아니고.
지난 일요일 오후 세시 공연을 보았다.
15분 전 쯤 입장했을 때 상당히 비어 있던 좌석은 공연 시작 바로 전에 다 찼다. 신씨네 소극장이 350석 정도라고 하던가. 설마 매회 매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꽤 많은 사람이 찾는 공연임은 틀림없는 듯 하다. 헤드윅과 마찬가지로 조승우의 인기 때문에 다른 출연자의 공연도 덩달아 인기를 끈 것인지, 전 공연(올해가 세 번째라고 한다.)이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용과 캐스팅에 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본 "렌트"의 총평을 하자면, 전체적으로 산만하다고 해야 할까, 지루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래저래 몰입이 잘 안되는 범작이랄 수 있겠다. 그러니까, 조승우 출연같은 이슈가 아니라면 굳이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은 아니라는 것.
일단 뉴욕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예술가들과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얼마만큼 매력적인 소재일까 궁금하다. 하기야 관객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은 소재 자체가 주는 친근함이나 매력이 아닐 터이니 이건 넘어가자.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공연은 좀 산만하다. 두 세가지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데, 소극장의 작은 무대가 시선을 집중시키는게 아니라 오히려 산만함을 부각시킨다. 다 해야 16명이 등장하는 군중씬도 그다지 조화롭지 못하다. 큰 무대라면 더 나을까.
'로저' 역할의 신동엽의 연기는 좀 밋밋하고 노래도 약하다. '마크' 역의 나성호(맞나?)는 '노을'이라는 그룹의 멤버라고 하던데, 오히려 뮤지컬 배우라고 해도 믿겠다. '머린' 역의 조서연은 조승우의 누나란다. 얼굴은 어려보이더만. 여튼, 별로다. 자유분방한 성적 매력과 넘치는 예술적 끼를 지닌 인물이라는 설정일텐데, 조서연의 머린은 어느 쪽도 아니다. 좀 신경질적이고 유아적으로 보인다.
제일 훌륭한 배역은 게이 '엔젤'역의 김호영. 두어 씬이 끝날 때까지 남자인 줄 몰랐다. 내가 둔한건지. 늘씬하게 뻗은 다리랑 잘록한 허리를 움직이는 모습이 틀림없이 여자인 줄 알았다니까. 그러다 고음을 노래할 때 비로소, 어, 남자였어, 하고 놀랐다. 앞서 두 번의 공연에서도 '엔젤'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연극 "이"에서 '공길'이었다고 하니, 예쁜 여장 남자 전문 배우라 아니할 수 없다.
가장 큰 불만은 의자다.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쿠션이 전혀 없는 딱딱한 의자라니, 너무했다. 총 2시간 반의 공연을 보고 나오니 엉덩이랑 다리가 엄청나게 쑤신다. 신씨네 소극장, 앞으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작품이 공연되는게 아니라면,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뮤지컬 영화 렌트도 개봉했다던데, 아직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되면 그 영화를 봐야겠다. 연출이 문제인지 작품 자체가 나랑 안 맞는건지 비교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