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위한 경제학
전용복 지음 / 진인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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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재정건전성, 포퓰리즘


전 국민에 줄 듯 안 주는 재난지원금 논의, 나아가 기본소득 논쟁에서 보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재정건전성이다. 정부는 버는 만큼만 지출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정부가 빚까지 내는 건 불어 닥칠 부작용이 훨씬 크다. 이런 상식을 거스르고 돈을 퍼주며 표를 모으려는 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정부는 세입이 부족하면 빚을 내고, 더 이상 빌릴 데가 없으면 돈을 찍어낸다. 정부가 찍어낸 돈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며 경제를 막장으로 내몬다. 지폐로 공예품을 만들 지경에 이른 베네수엘라를 보라! 건전한 시민은 마땅히 재정적자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정책과 이를 선동하는 정치인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를 거부해야 한다는 이론이 미국에서 불어오고 있다. 요즘은 미제가 명품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이것만큼은 주목해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흥행하고, 40%의 미국인이 사회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답하는 분위기 형성에도 기여한(?) 이것의 이름은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이다.

 


현대화폐이론과 현대금융시스템


현대화폐이론(이하 “MMT”)은 재정건전성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념들에 대한 팩트폭력이다. 재정적자를 비판하는 주류경제학은 MMT가 보기에 현실과는 딴 판인 허상을 전제하고 있다. MMT는 현대금융시스템을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주류경제학을 논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정부의 재정적자가 최악의 정책이라는 믿음은 중앙은행만이 화폐를 발행하고, 증가한 화폐는 시중에 직접 유통되며, 이러한 통화량 증가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전개를 깔고 있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지점에서 잘못된 주장이다. 화폐는 민간은행도 창조할 수 있으며, 중앙은행의 통화는 실제로는 한정된 영역에만 머문다.

MMT에 따르면 현대금융시스템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은 민간은행(1금융권)과 가계, 기업이 활동하는 무대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거래는 최종적으로 민간은행에 개설된 가계와 기업들의 계좌 간의 이체로 결제된다. 손에서 손으로의 현금거래에서나 쓰이는 지폐와 동전은 지불수단의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불수단으로서의 은행예금은 저축뿐만 아니라 은행의 대출에 의해서도 창조되며, 그것도 매우 손쉽게 늘릴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은 대출금을 자기 은행의 계좌로 입금해주기 때문이다. 은행 장부 차변의 대출자산 숫자와 대변의 고객 계좌 잔고(즉 부채) 숫자만 함께 늘려주면 된다. 이러한 회계 처리가 벽에 부딪치는 건 고객이 현금을 인출할 때나 다른 은행으로 이체할 때뿐이다.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서 지폐를 받아 오거나, 타은행으로 송금해줄 때는 상대에게 대가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대가가 바로 중앙은행의 통화, 지급준비금이다.


현대금융시스템의 두 번째 차원은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중앙정부로 이루어져 있다(이하에서 정부는 중앙정부만을 의미한다). 민간은행과 정부는 중앙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데, 이 계좌의 잔고가 바로 지급준비금이다. 지급준비금의 역할은 은행 간의, 은행과 정부 간의 지불수단이라는 점이다. 은행이 중앙은행에서 지폐를 받아오는데, 고객의 타은행 이체 요구에 대응할 때, 은행으로 납부된 세금을 정부로 건네줄 때, 정부나 중앙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사고 팔 때도 지급준비금을 사용한다. 그리고 어떤 은행이 지급준비금이 부족하여 중앙은행이나 다른 은행으로부터 차입할 때 형성되는 금리가 바로 언론에서 자주 나오는 그 기준금리이다.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 차입 수요가 많아지면 기준금리 준수를 위해 중앙은행은 지급준비금을 공급한다(=공개시장운영. 언론은 이를 유동성 공급으로 표현한다). 민간은행과 중앙은행의 차이점은 중앙은행의 화폐공급에는 어떤 경제적인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민간은행에는 고객의 인출 요구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지급준비금 보유와 조달이라는 장애가 존재한다).


생소한 내용이지만 이건 꼭 기억하자. 민간경제에서 대부분의 지불수단은 은행예금이다. 예금은 은행의 대출에 의해서도 창조된다.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정부끼리는 그들만의 통화인 지급준비금을 사용한다. 금융시스템 속에서 은행예금과 지급준비금의 창조는 규제만 없다면 무제한적이다. 관련 실무자라면 당연시 여기는 이런 사실을 주류 경제학자들은 외면한다고 MMT는 꼬집는다.

 


공공재로서의 화폐, 정부의 역할


현대금융시스템의 두 가지 차원과 각 차원의 상이한 지불수단에 대한 MMT의 설명은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를 바로 연결 짓는 믿음이 잘못임을 보여준다. 만약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신용카드 등의 결제대금 방식으로 지급한다면, 정부가 보유한 지급준비금이 중앙은행에 개설된 민간은행의 계좌로 이체될 것이고, 민간은행은 이체 받은 지급준비금만큼 카드회사 계좌의 예금을 늘여줄 것이다. 정부지출은 이렇게 통화량(은행예금)을 증가시킨다. 반대로 납세자들이 은행예금으로 세금을 납부하면 예금은 사라지고 정부의 지급준비금이 늘어나므로 민간부문의 통화량은 줄어든다. 따라서 통화량이 실제로 증가하려면 세출이 세입을 초과해야 한다.

그런데 재정적자만이 아니라 은행이 대출을 상환액 이상으로 늘려도 통화량은 늘어난다. 실제로는 민간은행의 무분별한 신용공급(은행에게는 대출자산, 반대편에게는 부채)이 인플레이션과 버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많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재정적자에도 국가부도 운운 등 온갖 반대에 직면해야 하는 정부보다 대출을 늘릴수록 돈을 버는 은행이 통화량 증가에 항구적 이해를 갖는다. 한국에서 부동산이 급등하는 동안 함께 나란히 급증한 건 가계부채였다. 손쉬운 대출과 레버리지 투자가 자산버블의 주 원인인데도 언론은 엉뚱한 곳에 책임을 전가한다.


만약 정부가 실제로 돈을 펑펑 쓴다면 어떨까? 정부는 부족한 세입 대신 국채를 민간은행에 팔아 적자를 메울 것이다. 민간은행은 지급준비금으로 국채를 매입한다. 대량의 국채 발행이 은행의 지급준비금을 빨아들이며 국채금리를 인상시키면 중앙은행이 나서서 민간은행이 보유한 국채를 사들이며 지급준비금을 공급한다(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직접 국채를 사는 건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제 민간은행 대신 중앙은행이 국채를 보유한다. 그런데 정부가 중앙은행에 지급하는 국채이자는 다시 정부로 돌아온다. 중앙은행은 정부기관이기 때문이다. 정부부채가 아무리 커져도 채권자가 자국의 중앙은행이라면 부도날 일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부채는 장부상의 숫자와 역사적 기록(적자액의 누적)에 불과하다. 90년대 이후 일본과 2008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양적 완화의 실제 의미이다. 정부부채 증가와 국가부도를 동일시하는 건 국채와 외채를 구분하지 않는 무지 탓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아무리 많이 들고 있더라도 그 나라 정부는 파산하지 않는다.


MMT는 화폐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현대 화폐는 민간에서는 금융상품(채권-채무관계) 또는 세입·세출의 매개로서 형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리고 화폐의 탄생과 죽음을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자신의 발권력을 행사한다. 화폐는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고 분배하기 위한 사회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공재의 일종이다. 총생산물이 증가하는 만큼 원활한 거래와 분배를 위해서는 화폐량도 늘어야 한다. 그런데 화폐공급을 이윤 동기의 민간은행 대출에 맡기는 방식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정부가 재정적자로 직접 지출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이제까지의 논의와 결론을 더 유익한 내용들과 함께 쉽고 상세하게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저자 전용복)를 추천한다. MMT가 뭔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유명한 학자들도 헛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존재한다. MMT를 부당한 대우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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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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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교에 다닐 무렵 한 번 읽고 책무리들 속에 십 몇 년 간 방치해왔던 책이다. 보지 않는 책들은 정리해 볼 요량으로 뒤적이다 눈에 먼저 들어왔다. “가라타니 고진.” 흐릿해진 기억 속의 이름이다. 2005년 정도? 당시 유행에 편승해 윤리21을 먼저 보고, 트랜스크리틱을 이어 읽었는데 마르크스에 대한 독특한 독해에 공감할 수 없어 더 이상 읽지 않았던 저자였다.

중고책으로 내놓기 이전에 책도 얇겠다, 다시 한 번 읽었다. , 네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열심히 읽은 건 아니지만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어 기록을 남긴다.

 

2.

고베 시에서 중학생이 연쇄살인 사건을 저질렀고, 일본의 여론은 사회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무척이나 강하게 청구했다고 한다. 이는 자식이 살인자여도 부모만큼은 변호해주고 이에 대해 공감해주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 비교할 시 일본 특유의 사회현상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런데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정당한가? 책임을 묻는다는 건 사건의 원인이 곧 책임의 주체라는 인식과 같이 하는데, 이 말 대로라면 막상 살인을 저지른 자식에게는 잘못이 없는 셈이 된다. 살인사건은 불운한 가정환경 같은 원인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의 도덕 체계는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가 범죄의 책임을 그 행위자에게 묻는 것은 범죄자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자유의 존재라는 걸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자유가 존재하는 것일까? 사건의 발생을 계통적으로 추적하면 숱한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있을 것이며, 결국 존재하는 건 총체, 즉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인 요소들과 요소들 사이의 엉키고 엉킨 실타래 같은 관계들의 앙상블이다.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 자유와 책임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위대한 결정론자들, 즉 스피노자와 마르크스, 프로이트는 한편으로는 자유와 해방의 사상가들이기도 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를 빌어 결정론과 구조,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괄호 속에 넣어 놓는 관점의 이동을 통해 자유를 위한 공간을 정립한다.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지만, 총체 속의 개체에 불과하지만 타자를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령을 받듦으로써 자기 자신이 원인으로서 행동한다는 의미의 자유를 쫓을 수 있다.

자유에 대해 위의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면 책임의 의미도 변한다.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부자유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것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는 자기가 자기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타자를 목적으로서 대하라는 명령을 받드는 것이다. 자유는 능동적인 상태이며 삶이 가진 생명과 활력의 표현이다. 반면에 부자유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 자신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우리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 건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필연의 감옥에 갇혀있는 우리의 관성과 무능력이다.

 

3.

요즘 독서의 효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무엇도 바꾸지 못하는 쓸모없는 독서를 난 왜 하고 있지? 윤리21에는 가라타니 고진의 독서와 사유가 알기 쉽게 펼쳐져 있다. 상당히 추상적인 논의이지만, 구체적인 이슈들을 저울질하는 데 잘 끌어다 쓰고 있다. 요령 있는 글이 아름답게도 보인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한 덕후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부러운 마음도 든다. 이 부러움이 사라지기까지 중고책으로 내놓는 건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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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여행
한스 위르겐 크뤼스만스키 지음, 김신비 옮김 / 말글빛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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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모를 책이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오직 들어가는 말에서의 아래의 문장들뿐이었다.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사람과 그의 전기를 쓰는 작가의 대부분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낸 마지막 몇 개월이 그의 업적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본능적으로도, 또한 이념적으로도 너무나 새로운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 경험들은 더더욱 잘 정리되어야 한다.

그는 식민지 정치를 실제로 경험해 보았으며 외모도 바꿨다. 실제로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몬테카를로에서 부르주아의 상징인 카지노에 빠지기도 했으며,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우유 섞인 브랜디를 마시면서 삼류 소설을 줄기차게 읽었다.”

 

나머지는 이상한 번역인지, 이상한 내용인지로 채워져 있다. 흥미를 잃고 대충대충 읽어서 전부를 짚어낼 순 없지만 특히 눈에 밟힌 것들을 말해보겠다.

 

25전기는 이미 넓은 구간도 소리 없이 수월하게 전송된다. 곳곳에 새로운 종류의 동력기, 발전기, 터빈이 있다. 이러한 장치들이 기계를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 호텔, 팬션 등에 전기가 흐른다. 무엇보다 전선 케이블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가치 있는 정보들을 실어 나른다.”

마르크스가 증기 기관차 안에서 기술진보에 대한 사유를 하는 걸 표현한 문장들 중 하나인데, 그 내용이 책 안의 시간대인 1882년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에디슨이 뉴욕에서 처음 직류 공급 시스템을 선보인 게 1882년이고, 2차 산업혁명 또는 전기의 시대로 불리며 전기가 증기를 제치고 주요 에너지원이 되는 건 세기가 바뀌고 나서이다. 1882년에 전기는 아직 동력원이라기보다는 통신수단(전보)이었다.

 

35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지배계급과 상반된 계급을 가진 오래된 시민사회에 모든 것이 자유롭게 발전하는 연합이 결성된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연합하라!”

151계급과 계급 차이가 있던 구 시민사회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인 일종의 연맹개념으로 바뀐다.”

똑같은 말을 다른 페이지에서 서로 다르게 번역한 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번역의 질이다. 이는 정말 유명한 공산당 선언의 문장들인데, 박종철 출판사 판본과 비교해보자.

박종철출판사 번역 :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의 자리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87지금 날씨가 덥긴 하지만 시로코(Scirocco, 독일 폭스바겐사의 소형 승용차)가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90마지막 며칠을 아프리카에서 보낼 때 시로코는 정말 열심히 달려 주었다. 하지만 돌풍과 모래바람, 그리고 지금은 예기치 않은 추위로 시로코가 고장 난 상태다.”

앞뒤 맥락없이 1882년에 폭스바겐 승용차를 들이 댄다. 폭스바겐이 생긴 건 1937년이다. 그리고 시로코는 사하라 사막에서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불어가는 세찬 열풍을 말한다. 발로 한 번역인지, 원 책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105마르크스는 자신보다 4살 아래인 (아우구스트) 베벨을 특히 더 아꼈다.”

베벨은 1840년에 태어났고, 마르크스는 1818년생이다.

 

작은 판형에 재생용지로 책을 낸 게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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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e시대의 절대사상 21
김응종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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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에 읽었다. 책 자체의 흡인력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였다.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아날 학파 2세대로서 역사학의 교황으로 불린 위대한 역사학자. 다른 하나는 월러스틴 등의 세계체계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사상가. 역사학자이자 거대담론의 사상가로서 브로델은 어쩌면 이 분야에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정거장일지도 모른다. 다만 브로델의 글을 직접 접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이다.

 

현재 국내에 그의 대표작이 둘 다 번역돼있지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이고,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4권이다. 이러니 자연히 쉬운 입문을 도와줄 수 있는 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꾀의 결론은 현재까지도, 아쉽지만도 단연코 이 책인 것 같다. 아쉬운 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2006년 이후로 국내 역사학계에 의해 대중적인 브로델 연구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브로델이 현재적 가치와 인기를 잃어서일까? 모를 일이지만, 세계체계론에 관한 책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해서 열정과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작은 수로나마 있어 보이는 것에 비해 브로델에 대한 비교적 손쉬운 독서의 길이 매우 한정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책은 브로델의 두 주요 저서를 소개하며, 그의 주요 개념체계에 대해서 이해시켜준다. 지중해편에서는 구조-콩종튀르-사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편에서는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브로델은 변하는 것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주목하는데, 이를 장기지속이라는 맥락 속에서 구조물질문명으로 개념화한 것 같다. 물론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영원불멸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속된다는 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이라는 듯 브로델의 장기지속은 긴 시간대 속에서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존재이다.

 

브로델은 구조와 물질문명이라는 토대 바로 위에 콩종튀르와 시장경제의 개념을 짓는다. 이 구조물이 브로델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콩종튀르와 시장경제는 샌드위치 사이에 낀 햄 같은 것들인데, 햄을 감싸는 양 쪽의 빵이 헐거워진다면 바닥으로 흘러버리고 마듯이, 구조와 사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양 극단이 그 중간과 사이의 의미를 규정해주는 것 같다.

 

구조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에 비해 사건에 대해서는 브로델은 먼지와 같다고 했다. 움직이지 않는 책상 위에는 먼지만 잔뜩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책상 위의 먼지가 우리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해지기 위해서는 책상이 크게 흔들려야 한다. 이 흔들림이 바로 콩종튀르이다. 콩종튀르에 의해 구조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수많은 사건들을 역사에 풀어놓는다. 그러나 흔들림이 멈추고 나면 먼지는 다시 가라앉는다.

 

브로델이 이후의 자본주의 비판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자본주의 개념은 역시 장기지속과 반대되는 단기간의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자본은 최대의 이윤을 쫓아 상업과 산업, 금융의 형태로 빠르게 변신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최대의 이윤을 보장하는 건 독점이며, 경쟁은 독점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본질은 독점과 다름 없다. 결국 자본의 변신이란 자신이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고, 스스로 구조화해내는 공간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주 같은 쉬이 변하지 않는 물질문명과 이윤을 쫓아 빠르게 변신하는 자본주의 사이의 시장경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질문명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상품과 노동의 교환의 영역이며, 자본에게는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상품과 화폐와 부의 흐름이다. 자본은 시장경제 속의 부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형하며 자신을 살찌운다. 시장은 문명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도, 자본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곳이며, 콩종튀르와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의 흔들림은 자신에게 연결된 길고도 짧은 것들을 거센 역사의 풍랑으로 내몬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구절에 대해 말하겠다. 저자는 무려 들어가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페르낭 브로델의 이름이 (서울대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반가웠던 이유는 역사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씁쓸했던 이유는 과연 이 역사사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정도의 위대한 역사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브로델의 역사는 그의 신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른바 브로델 거품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기회 나는대로 브로델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하다. 브로델의 신화에 이끌려 책을 들었겠지만 그 신화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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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진실
미즈노 가즈오 지음, 이용택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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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상가들을 언급하며 나름대로 자기주장을 이끌어가지만, 떠오르는 말은 ˝주화입마˝와 ˝아무렇게나 논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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