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e시대의 절대사상 21
김응종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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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에 읽었다. 책 자체의 흡인력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였다.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아날 학파 2세대로서 역사학의 교황으로 불린 위대한 역사학자. 다른 하나는 월러스틴 등의 세계체계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사상가. 역사학자이자 거대담론의 사상가로서 브로델은 어쩌면 이 분야에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정거장일지도 모른다. 다만 브로델의 글을 직접 접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이다.

 

현재 국내에 그의 대표작이 둘 다 번역돼있지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이고,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4권이다. 이러니 자연히 쉬운 입문을 도와줄 수 있는 책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꾀의 결론은 현재까지도, 아쉽지만도 단연코 이 책인 것 같다. 아쉬운 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2006년 이후로 국내 역사학계에 의해 대중적인 브로델 연구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브로델이 현재적 가치와 인기를 잃어서일까? 모를 일이지만, 세계체계론에 관한 책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해서 열정과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작은 수로나마 있어 보이는 것에 비해 브로델에 대한 비교적 손쉬운 독서의 길이 매우 한정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책은 브로델의 두 주요 저서를 소개하며, 그의 주요 개념체계에 대해서 이해시켜준다. 지중해편에서는 구조-콩종튀르-사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편에서는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브로델은 변하는 것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주목하는데, 이를 장기지속이라는 맥락 속에서 구조물질문명으로 개념화한 것 같다. 물론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영원불멸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속된다는 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이라는 듯 브로델의 장기지속은 긴 시간대 속에서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존재이다.

 

브로델은 구조와 물질문명이라는 토대 바로 위에 콩종튀르와 시장경제의 개념을 짓는다. 이 구조물이 브로델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콩종튀르와 시장경제는 샌드위치 사이에 낀 햄 같은 것들인데, 햄을 감싸는 양 쪽의 빵이 헐거워진다면 바닥으로 흘러버리고 마듯이, 구조와 사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양 극단이 그 중간과 사이의 의미를 규정해주는 것 같다.

 

구조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에 비해 사건에 대해서는 브로델은 먼지와 같다고 했다. 움직이지 않는 책상 위에는 먼지만 잔뜩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책상 위의 먼지가 우리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해지기 위해서는 책상이 크게 흔들려야 한다. 이 흔들림이 바로 콩종튀르이다. 콩종튀르에 의해 구조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수많은 사건들을 역사에 풀어놓는다. 그러나 흔들림이 멈추고 나면 먼지는 다시 가라앉는다.

 

브로델이 이후의 자본주의 비판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자본주의 개념은 역시 장기지속과 반대되는 단기간의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자본은 최대의 이윤을 쫓아 상업과 산업, 금융의 형태로 빠르게 변신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최대의 이윤을 보장하는 건 독점이며, 경쟁은 독점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본질은 독점과 다름 없다. 결국 자본의 변신이란 자신이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고, 스스로 구조화해내는 공간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주 같은 쉬이 변하지 않는 물질문명과 이윤을 쫓아 빠르게 변신하는 자본주의 사이의 시장경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질문명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상품과 노동의 교환의 영역이며, 자본에게는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상품과 화폐와 부의 흐름이다. 자본은 시장경제 속의 부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형하며 자신을 살찌운다. 시장은 문명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도, 자본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곳이며, 콩종튀르와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의 흔들림은 자신에게 연결된 길고도 짧은 것들을 거센 역사의 풍랑으로 내몬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구절에 대해 말하겠다. 저자는 무려 들어가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페르낭 브로델의 이름이 (서울대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반가웠던 이유는 역사가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씁쓸했던 이유는 과연 이 역사사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정도의 위대한 역사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브로델의 역사는 그의 신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른바 브로델 거품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기회 나는대로 브로델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하다. 브로델의 신화에 이끌려 책을 들었겠지만 그 신화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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