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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1.
대학교에 다닐 무렵 한 번 읽고 책무리들 속에 십 몇 년 간 방치해왔던 책이다. 보지 않는 책들은 정리해 볼 요량으로 뒤적이다 눈에 먼저 들어왔다. “가라타니 고진.” 흐릿해진 기억 속의 이름이다. 2005년 정도? 당시 유행에 편승해 「윤리21」을 먼저 보고, 「트랜스크리틱」을 이어 읽었는데 마르크스에 대한 독특한 독해에 공감할 수 없어 더 이상 읽지 않았던 저자였다.
중고책으로 내놓기 이전에 책도 얇겠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세, 네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열심히 읽은 건 아니지만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어 기록을 남긴다.
2.
고베 시에서 중학생이 연쇄살인 사건을 저질렀고, 일본의 여론은 사회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무척이나 강하게 청구했다고 한다. 이는 자식이 살인자여도 부모만큼은 변호해주고 이에 대해 공감해주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 비교할 시 일본 특유의 사회현상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런데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정당한가? 책임을 묻는다는 건 사건의 원인이 곧 책임의 주체라는 인식과 같이 하는데, 이 말 대로라면 막상 살인을 저지른 자식에게는 잘못이 없는 셈이 된다. 살인사건은 불운한 가정환경 같은 원인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의 도덕 체계는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가 범죄의 책임을 그 행위자에게 묻는 것은 범죄자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자유의 존재라는 걸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자유가 존재하는 것일까? 사건의 발생을 계통적으로 추적하면 숱한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있을 것이며, 결국 존재하는 건 총체, 즉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인 요소들과 요소들 사이의 엉키고 엉킨 실타래 같은 관계들의 앙상블이다.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 자유와 책임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위대한 결정론자들, 즉 스피노자와 마르크스, 프로이트는 한편으로는 자유와 해방의 사상가들이기도 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를 빌어 결정론과 구조,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괄호 속에 넣어 놓는 관점의 이동을 통해 자유를 위한 공간을 정립한다.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지만, 총체 속의 개체에 불과하지만 “타자를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령을 받듦으로써 자기 자신이 원인으로서 행동한다는 의미의 자유를 쫓을 수 있다.
자유에 대해 위의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면 책임의 의미도 변한다.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부자유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것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는 자기가 자기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타자를 목적으로서 대하라는 명령을 받드는 것이다. 자유는 능동적인 상태이며 삶이 가진 생명과 활력의 표현이다. 반면에 부자유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 자신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우리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 건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필연의 감옥에 갇혀있는 우리의 관성과 무능력이다.
3.
요즘 독서의 효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무엇도 바꾸지 못하는 쓸모없는 독서를 난 왜 하고 있지? 「윤리21」에는 가라타니 고진의 독서와 사유가 알기 쉽게 펼쳐져 있다. 상당히 추상적인 논의이지만, 구체적인 이슈들을 저울질하는 데 잘 끌어다 쓰고 있다. 요령 있는 글이 아름답게도 보인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한 덕후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부러운 마음도 든다. 이 부러움이 사라지기까지 중고책으로 내놓는 건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