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 효?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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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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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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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매일 시읽기 60일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 
Lines Written In the Days of Growing Darkness
- 메리 올리버(Mary Oliver)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그러니 그 누가 ​
땅에 떨어진 꽃잎들에게 

그대로 있으라 
외치겠는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을 알면서, 
그게 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러니 오늘, 그리고 모든 서늘한 날들에 
우리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비록 해가 동쪽으로 돌고, 
연못들이 검고 차갑게 변하고, 
한 해의 즐거움들이 운명을 다한다 하여도. 


메리 올리버 시집을 출간과 거의 동시에 샀다. 좋다. <<천 개의 아침 Thousand Mornings>> 원서는 2012년 시인의 나이 일흔일곱에 출간되었다. 거의 평생을 자연과 교감하고 산 노시인의 달관과 해학이 느껴진다.

나는 밝아오는 아침보다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어가는 저녁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 시부터 읽었다. 

모든 것이 어둠에 버무려지는 모양새를 시인은 ˝풍요로운 곤죽˝이라 표현했다. 영어로는 ˝rich mash˝. 좋은 번역이다. ˝존재했던 것˝과 ˝존재할 것˝이 ˝결합되는˝ 시각. 나는 이 시각의 고요를 사랑한다. 세상이 푸른빛 품은 먹물에 젖어들 때 잠시 숨들이 멈춘 듯한 고요가 찾아든다.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무엇에 대해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으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있다. 나는 하늘을 본다. 삶이 서늘해도 시인은 ˝쾌활하게˝ 살아가라 한다. ˝해가 동쪽으로 돌고, / 연못들이 검고 차갑게 변하고, / 한 해의 즐거움들이 운명을 다한다 하여도.˝ 그러니까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전복이 뭐 별거랴. 쾌활함으로 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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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 매일 시읽기 59일 

삼십세 
-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를 읽은 후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무에 이리 무거운가, 무에 이리 쓸쓸한가, 무에 이리 처절한가 하는 마음에 <<이 시대의 사랑>>을 구매했다. 알라딘 판매자 중고가는 2,100원. 배(책)보다 배꼽(택배)이 컸다. 이 시집이 출간된 해는
1981년, 이 중고 시집의 첫 구매 시기는 1999년이다. 어떤 동생이 친한 언니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가 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적힌 축하 문구에 잠시 당황했다. 짧지만 마음을 담아 쓴 글이 있는 책도 중고로 내놓는구나, 강적인걸, 싶어서.

첫 구매자는 이 시집을 아주 좋아했던 모양이다. ˝너무 힘들거나 외로울 때 한 페이지씩 읽으면 위안이 되는 시예요. . . . . . 즐겁고 편안할 땐 절대(!) 읽지 마세요. 특히 ˝삼십세˝라는 시는 내가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삽십세‘부터 읽었다. ‘개 같은 가을이‘처럼 첫 두 행이 강렬하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인은 1952년생이다. 이 시는 1981년, 시인의 나이 서른에 쓰였다. ‘삼십세‘는 30쪽에 실려 있다. 편집의 깜찍함. 

나이는 어느 순간부터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숫자가 된다. 그 숫자가 시인에겐 30이었던가 보다. 첫 두 행 이후 이어지는 시구들은 아리송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화자에게 서른 이후는 ˝새로 꿀 꿈이 없는˝ 시간이고, ˝끝없는 광물질˝로 가득한 세계이다. 결코 달갑지 않은 그 세계가 기어코 오고 말았으니, 흰자위 드러내며 ˝부릅뜬˝ 눈 스르르 감고 아쉬운 이십대에 흰 손수건을 흔들며 ˝행복한 항복˝을 해버리자고,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화자는 말하는 듯하다.

마지막 행에서 웃었다. 나이 들어 좋은 점들 중 하나. 얼굴에 철판을 깔 수 있다. ˝기쁘다우리˝ ^^ 서른살을 맞는 이들에게 이 시를 추천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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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느질 수다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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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따뜻따뜻.포근포근.다정다정하다. 저자가 기워 만든 조각이불처럼. 맘이 추울 때 읽으면 난로가 되어줄 책이다. 바느질 수업은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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