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1 매일 시읽기 64일 

정원사 The Gardener 
- 메리 올리버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식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 


메리 올리버의 <<천 개의 아침>>을 아껴 읽는다. 메리 언니는 시를 정말 쉽게 쓰는 듯하다. 어떻게 이렇게 쉬운 말로 간명하게 쓰지, 하는 감탄이 든다. 쉽게 쓰인 것처럼 읽히는 시는 좋은 시일까? 적어도 메리 언니의 시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겠다. 가볍게 술술 읽어 내려가다, 매번 마지막 연이나 행들에서 멈칫, 아, 하며 사색에 잠기게 된다.

‘정원사‘의 마지막 연을 읽고 떠오른 문장이 있다. ˝자기 일에 성실한 것이 ˝도통하는 일˝이다.˝(<<행복한 책읽기>>김현) 고 김현 선생이 김지하 시인의 <<애린 1,2>>를 읽고 쓴 문장이다. ˝도통하는 일˝은 김지하 시인의 표현이다.

사람들로부터 ˝단순˝하다는 말을 듣고 사는 정원사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수행한다. 생각이 너무 많다고, 자신을 타박하던 메리 언니는 자식 새끼 같은 ˝장미를 돌보고 있는,˝ 그 일에 여념이 없는 정원사를 보며 또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일에 성실한 것이 도통하는 일이다.˝ 때론 물음표를 날려 버리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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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살아남기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 7
정준규 그림, 코믹컴 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남기 시리즈는 우리 애들 애독서에요. 중딩 된 딸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엄마인 저는 아들이 재미나게 읽어주면 듣고 웃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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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매일 시읽기 63일 

허리케인Hurricane 
- 메리 올리버 

그 허리케인은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것이었어. 바람이 
나무들을 쥐어뜯고, 여러 날 
비스듬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지. 
허리케인의 손등이 모든 것들을 
후려쳤지. 나는 나무들이 휘고
잎들이 떨어져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봤어. 
마치, 그것으로 끝이 난 것처럼. 
그건 내가 겪은 하나의 허리케인이었고, 
또 하나는 다른 종류의 허리케인으로, 
더 오래갔지. 그때 
나는 내 잎들이 포기하고 
떨어지는 걸 느꼈어. 허리케인의 손등이 
모든 것들을 후려쳤지. 하지만 
진짜 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봐, 
그 여름이 끝나갈 무렵 
뭉툭한 가지들에서 새잎이 돋아났어. 
철이 아니었지, 그래, 
하지만 나무들은 멈출 수 없었지. 그들은 
전신주처럼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 그리고 잎이 난 다음엔 
꽃이 폈어. 어떤 것들에겐 
철이 아닌 때가 없지. 
나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 

And after the leaves came
blossoms. For some things
there are no wrong seasons.
Which is what I dream of for me. 

메리 올리버의 《천 개의 아침》을 천천히 읽는다. 메리 언니는 어려운 어휘를 거의 쓰지 않는다. 난해한 문구로 시를 치장하지도 않는다. 

저기, 허리케인에 휘고 잎들을 죄다 쥐어뜯긴 나무들이 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돋아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을 줄 알았던 나무들이 뜬금없이, 난데없이 꿈틀거렸다. 봐라!!!! 나 아직 살아 있다!!!! 라고 말하듯, ˝뭉뚝한 가지들˝에서 새순을 쏘옥 내밀었다. 속았지,
메롱~~~. 이런 속임수, 이런 메롱이라면 달게 당하리. 자연의 경이로운 메롱.

˝어떤 것들에겐 / 철이 아닌 때가 없지.˝라는 대목을 읽다, 아, 감탄사를 내뱉었고,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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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 것이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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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 매일 시읽기 62일 

가을의 끝 
- 최승자 

자 이제는 놓아 버리자 
우리의 메마른 신경을. 
바람 저물고 
풀꽃 눈을 감듯. 

지난 여름 수액처럼 솟던 꿈 
아직 남아도는 푸른 피와 함께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오래 전에 죽은 용암의 중심으로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터지지 않는 그 울음 속 
한 점 무늬로 사라져야겠네. 


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가 가을의 시작을 노래하는 시라면 ‘가을의 끝‘은 제목 그대로 가을의 끝을 노래한다. 쳐들어 오는 가을을 ‘개‘ 같다고 하며 서슬 퍼렇게 거부하던 시인은 저무는 가을 앞에서 바스라지는 나뭇잎처럼 메말라 버린 신경을 놓아버리겠다고 말한다.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땅 속으로 땅 속으로˝으로 내려가 ˝한 점 무늬로 사라˝지겠다고. 그런 뒤, 한겨울을 보내고 더 단단해져 푸른 잎으로 다시 태어나면 참 좋겠구나.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11월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뒷산에 올랐다. 푸른 옷 벗은 크고 작은 초목들 위로 진눈깨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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