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 매일 시읽기 62일 

가을의 끝 
- 최승자 

자 이제는 놓아 버리자 
우리의 메마른 신경을. 
바람 저물고 
풀꽃 눈을 감듯. 

지난 여름 수액처럼 솟던 꿈 
아직 남아도는 푸른 피와 함께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오래 전에 죽은 용암의 중심으로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터지지 않는 그 울음 속 
한 점 무늬로 사라져야겠네. 


최승자 시인의 ‘개 같은 가을이‘가 가을의 시작을 노래하는 시라면 ‘가을의 끝‘은 제목 그대로 가을의 끝을 노래한다. 쳐들어 오는 가을을 ‘개‘ 같다고 하며 서슬 퍼렇게 거부하던 시인은 저무는 가을 앞에서 바스라지는 나뭇잎처럼 메말라 버린 신경을 놓아버리겠다고 말한다.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땅 속으로 땅 속으로˝으로 내려가 ˝한 점 무늬로 사라˝지겠다고. 그런 뒤, 한겨울을 보내고 더 단단해져 푸른 잎으로 다시 태어나면 참 좋겠구나.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11월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뒷산에 올랐다. 푸른 옷 벗은 크고 작은 초목들 위로 진눈깨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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