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교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5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늘의 나는 교실 Das Fliegende Klassenzimmer』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책을 진작 읽었더라면, 진작 읽어야 했던 것을 . . .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를 위로했다. 다행이야,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서. 『하늘을 나는 교실』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집 책꽂이에 어김없이 꽂혀 있던 책이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날아다니는 양탄자 같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가득한 어린이책 같아서 그닥 읽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었다. 얼마 전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에리히 캐스터너 편을 읽다 이 책을 읽고 싶다, 꼭 읽어야겠다는 욕구가 부싯돌에 불붙듯이 확 일어났다.

이 책은 들어가는 대목이 여느 어린이책과 다르게 신선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런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아이들이 항상 명랑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도 슬픔과 눈물이 있고 그래서 불행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노라고 저자는 말한다. 머리말에 나와 있듯 이 책은 “용감한 사람과 겁 많은 사람, 영리한 사람과 머리가 나쁜 사람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용감무쌍한 영웅이 아니라 머리도 성격도 제각각인 다섯 명의 학생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남자 기숙학교인 김나지움 5,6학년들(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쯤)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연극을 준비한다. 그 연극의 제목이 <하늘을 나는 교실>이다. <하늘을 나는 교실>은 모든 아이들이 꿈꿀 만한 학교다. “오늘 수업을 현장에 가서 하겠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학생들은 비행기를 타고 현장으로 날아간다. 폼페이의 최후와 화산의 특성을 연구하러 베수비오 화산으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견학하러 이집트로, 북극곰과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황량한 땅을 보러 북극으로. 정말 멋지지 않은가. 금전적인 문제로 해외까지 갈 여유가 없다면 각종 책이나 비디오로 이른바 가상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 연극을 준비하는 다섯 명의 학생들은 나를 울리고 웃겼다. 부모에게 버림 받고서도 꿋꿋하게 자란 문학소년 요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에 옮길 줄 아는 용감한 아이 마르틴, 늘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고 살고 밥만 먹으면 더 껄떡대는 미래의 권투 선수 마르티스, 용기가 없어 늘 꽁무니를 빼는 땅꼬마 울리, 머리가 좋고 어려운 책들만 골라 읽으며 젠체하는 제바스티안. 이 각양각색의 애물단지들이 연극 연습을 중단하고 학교 울타리를 넘어 레알슐레 학생들과 벌이는 패싸움과 포로로 붙잡힌 친구 구출 작전은 통쾌하고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절대 도를 넘지 않는다. 싸움에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에게만 주먹과 따귀를 날리며, 학교 규칙을 어긴 이유를 선생님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며 그에 대한 벌칙을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정의와 의리와 반성을 아는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저마다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요니는 네 살 때 혼자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리자 아버지가 독일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 요니를 홀로 보낸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끝내 항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해 전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선장의 누이동생 집에서 지내게 된 요니는 네 살 때 겪은 그 아픔을 결코 잊지 못하고 많은 밤을 울며 지새웠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남몰래 슬픔을 삭였다. 크리스마스 방학 때도 돌아갈 집이 없어 기숙사에 남는 요니는 자신의 처지를 친구 마르틴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은 익숙해지기 나름이야. 자기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어. . .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아주 행복한 건 아냐. . . 그렇지만 아주 불행한 것도 아니야.”(212)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요니는 한편 안 됐지만 누구보다 대견하고 듬직하다. 

마르틴은 부모님이 가난해서 수업료의 반은 보조 받고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다. 그런데 올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집에 갈 수가 없다. 고향에 가려면 8마르크가 필요한데 부모님이 송금해준 돈은 고작 5마르크다. 그마저도 빌린 돈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집에 오지 말고 보내준 돈으로 초콜릿이라도 사 먹고 썰매도 타면서 씩씩하게 보내라고 당부한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르틴은 “절대로 울면 안 돼, 절대로 울면 안 돼, 절대로 울면 안 돼!”라고 백 번 넘게 속으로 다짐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유스투스 선생 앞에서 끝내 목 놓아 울고 만다. 도대체 그런 약속을 어떤 아이가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는가. 마르틴의 눈물은 그야말로 정직해서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유스투스 선생 덕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마르틴은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넉넉한 부모님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땅꼬마 울리는 겁쟁이라고 놀려대는 아이들의 등쌀에 화가 나 어느 날 결단을 내린다. 운동장 철봉대 사다리에서 우산을 펴고 눈 덮인 언 땅 위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 보인 것이다. “평생 남들한테 하찮은 사람 취급받을까봐 불안해하며 사는 것보다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게 더 낫다”는 유스투스 선생의 말은 행동의 결과보다 원인을 우선시한 사려 깊은 지적이었다. 그 사건 후로 땅꼬마 울리는 작은 몸집 안에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다. 

울리의 사건을 두고 무모했다고 말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제바스티안은 울리는 그냥 겁쟁이가 아니라며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 자신도 울리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이지만, 약아서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반면, 울리는 꾸밈없고 순수해서 무척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물론 제바스티안은 자신의 치부를 반성하거나 고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으로 일관하겠다고 선언하는 제바스티안의 소신도 근사해 보였다. 

다섯 친구들 중 마티아스는 자기 안의 슬픔이나 아픔이 가장 적은 단순한 아이다. 그러나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울리와 가장 친하고 그 친구가 다리를 다쳐 병실에 누운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껄떡 대장 마티아스는 속이 말랑말랑한 다정한 친구다. 먹기만 하면 기억력도 끝내준다니까 라고 말하는 마티아스 같은 친구가 있어 네 친구도 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개성 만점의 애물단지들이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두 어른이 있다. 골초지만 금연자 전용석인 고물 객차에 산다는 이유로 금연 선생으로 불리는 니히트라우허 씨와 옮고 그름을 어른의 잣대가 아닌 정확한 상황 판단에 의거해 따져 주는 유스투스(정의) 선생이다. 두 어른의 공통점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설교로 아이들을 억누르지 않고 그들의 정당한 행위(비록 그것이 교칙에 어긋난다 해도)에 대해서는 훌륭하다고, 잘했다고 말해줄 줄 아는 멋진 어른들이다. 이런 어른들이 많이 생긴다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리히 캐스트너는 사범학교를 나와 한때 학교 선생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표현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허황되지 않고 실감이 넘친다. 특히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그래 맞아 우리도 이렇게 말했어’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들이 많다. 이만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겪을 만한 사건과 갈등, 슬픔과 절망, 용기와 희망을 그려놓은 『하늘을 나는 교실』은 내 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책이다. 일본의 독일문학가 이케다 히로시는 나치에 저항한 에리히 캐스트너를 두고 “도덕이 무너져버린 시대”에 모럴리스트가 되려 했던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이 책의 머리말을 보면 저자의 그런 면이 엿보인다. 

“진정한 삶은 돈을 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데서 시작돼서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 . 여러분은 될 수 있는 한 행복해야 한다! 기쁨에 겨워 그 작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으라! / 다만, 어떤 것에도 속지 말고 어떤 것도 속이지 말라. 불행에 맞서는 법을 배우라. 실패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운이 나쁠지라도 기운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죽지 말라! 용기를 내라! / 권투 선수들 말마따나 펀치를 맞아도 강하게 버텨 내야 한다. 펀치를 받아치고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상이 여러분에게 먹이는 첫 펀치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세상이란 엄청나게 큰 글러브를 끼고 있으니까! 세상의 펀치를 견딜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고 있다가는 방 안에서 파리 한 마리가 기침만 해도 벌렁 나자빠져 앓아눕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기죽지 말라! 용기를 내라! 알겠는가? 이걸 깨달은 사람은 이미 반은 이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날아온 펀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용기와 지혜를 보여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 지혜 없는 용기는 어리석은 것이고, 용기 없는 지혜는 부질없는 것이다! 세계사에는 멍청한 사람이 겁 없이 굴거나 영리한 사람이 비겁하게 굴었던 시대가 많이 있다. 그것은 옳은 게 아니었다. / 용감한 사람들이 영리해지고, 영리한 사람들이 용감해질 때에야 비로소 인류의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자주 그릇되이 인식되어 왔는지 드러날 것이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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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8-1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을 예전에 읽긴 했는데요... 저런 멋진 말을 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역시 독서는 비독서랑 한몸인 것 같네요. ㅋㅋ 삶과 죽음이 한몸이듯이...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