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5 매일 시읽기 78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김행숙 

내 기억이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사람처럼 내 기억이 내 팔을 늘리며 질질 끌고 다녔다, 빠른 걸음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촛불이 바람벽에다 키우는 그림자처럼 기시감이 무섭게 너울거렸다
사람보다 더 큰 사람그림자, 아카시아나무보다 더 큰 아카시아나무그림자 
그러나 처음 보는 노인인데 . . . . . . 힘이 세군, 내 기억이 벌써 노인을 만들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나를 돌보고 있었다 

기억이 나를 앞지르기 시작했


2020년 첫 눈 내리는 날, 세 권의 시집이 내 집에 왔다. 이규리 시집에 이어 오늘은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를 뒤적거렸다. 2020년 7월에 출간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 시집의 첫 시다. 제목들을 후루룩 훑고 이 시와 다른 몇 편의 시들을 읽어 보니 시인은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하다.

나에게는 이제 ‘기억‘이란 말 끝에 ‘엄마‘가 따라붙는다. 어미가 치매 판정을 받은 지는 4년째. 내년이면 5년 차에 접어든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약이 정말 좋다) 엄마의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19가 더 심해지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 보는 면회도 허락될 것 같지 않아 며칠 전 엄마에게 다녀왔다. 내 어미는 여전히 딸을 기억한다. 사위와 손녀손자도 기억한다. 당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억한다.

내 어미는 이제 당신의 기억으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 오래 만났으나 만남을 뒤로한지 오래된 사람들을 더는 기억하지 못한다. 언젠가 어미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올까 두려우면서 그 날의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늘 생각한다.

˝처음 보는 노인인데 . . . . . ˝라는 구절을 읽다 덜커덩, 심장이 내려앉았다. 언제고 내 어미가 거울을 보고 저런 말을 할 것만 같아서. 기억은 인지 행위다. 그렇기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기억만 잃는 게 아니다. 몸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까지 같이 잃는다. 시간도 잃는다.

생각을 하기 힘든 엄마를 대신해 내가 엄마의 삶을 기억하려 애쓴다. 엄마가 내게 기억을 돌려주었듯이.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 대부분은 엄마의 기억을 통한 재기억들이다. 그 기억들은 어쩌면 ˝사람보다 더 큰 사람그림자˝처럼 애초의 사실보다 더 큰 기억으로 자리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왜곡된 기억조차 ‘나‘를 형성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사라지는 기억들, 잃어버리는 시간들이 안타까워서 내 어미를 생각할 때면 안쓰러움을 어쩌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걸 순리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래서 내 어미가 나를 보고 ˝니 년은 나이를 처 먹고도 아직도 애 같냐˝라는 말을 하도록 옛날과 똑같이 수다를 떨고 웃는다. 그러면 어미도 덩달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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