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7 매일 시읽기 70일
그릇
-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안도현 시인의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를 짬을 내 두어 편 읽었다.
<그릇>은 구도자의 길을 노래한 시 같다. 61년생 안도현 시인은 올해로 예순이다. 반백년에서도 십 년을 더 산 사람이 ˝자잘한 빗금˝이 수없이 나 있는 그릇을 보며 나의 ˝허물˝을 읽는다. 금 투성이 주제에 멀쩡한 백자 흉내를 내고 살았느냐며 조용히 스스로를 훈계한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 나라는 그릇˝임을 볼 줄 아는 자는 이미 도통해 있다. 시인의 그릇은 허물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작아 보이진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