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2 매일 시읽기 65일 

그 소, 애린 4 
- 김지하 

외롭다 
이 말 한 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가슴을 쓸고 가는 빗살 
빗살 사이로 언듯언듯 났다 저무는 
가느다란 햇살들이 얕게 얕게 
지난날들 스쳐 지날수록 
얕을수록 
쓰리다 
입 있어도 
말 건넬 이 이 세상엔 이미 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질 것 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 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 


어제 메리 올리버의 <정원사>를 읽다 떠오른 김현 선생의 문장, 더 정확하게는 김지하 시인의 문구 때문에 내 집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김지하 서정시집 <<애린>> 둘째권을 펼쳤다. 이 시집은 김지하 시인이 마흔여섯 되던 해인 1986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이 시집을 길에서 발견했다. 누군가 이사하며 폐품으로 쌓아올려 놓은 책들 사이에서 찾아냈다.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하며.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되었다.

<<애린>> 둘째권은 <소를 논함> <그 소, 애린> <그런데 저쪽에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 소 애린>은 50편의 연작시이다. 그 중 몇 편을 읽었는데, 흠, 물리적 감옥을 나온 시인이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김현 선생은 이 시집을 두고 ˝마음의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일기˝라고 썼다.(<<행복한 책읽기>> 105쪽)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쓰리다. 누구에게도 고백하기 어려워 더 쓰리다. 들어줄 이가 마땅치 않아 시인은 ˝외롭다˝고 허공에 대고 말한다. 허공을 바라보니 ˝가느다란 햇살들이˝ 허한 속을, 쓰린 속을 칼날처럼 베고 지나간다. 아, 더 아프다. 인생 중반이 넘어가면 삶은 참 헛헛해하고 쓸쓸해진다. 시인의 말따나 ˝아무것도˝ 딱히 쥐어지지 않고 ˝그리움마저˝ 끊어지곤 한다. 중년의 쓸쓸함을 나는 다음 시에서 더 진하게 느꼈다.

<그 소, 애린> 6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날 우습게 알기 시작했고
아이들마저 이제는 말 대답이 느리다
아무런 노여움도 슬픔도 없이
머얼건 애들
눈자위 건너다보는
내 눈자위에 걸린 머얼건
저 낮달
한낮 이 머얼건 쪼각달.

조각달이 아니고 ˝쪼각달˝이라니. 시인의 마음이 쪼각쪼각 찢겼나 보다. 찢긴 속을 무엇으로 꿰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