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매일 시읽기 58일
긍정적인 밤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에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시인의 저 시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작과비평사>에 실려 있다. 1996년에 출간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시집 한 권의 가격은 삼천 원. 시인의 말대로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정말 헐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의 구실도
못할까, ˝사람들 가슴˝ 뜨겁게 달구지 못할까 염려한다.
안도현 시인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들 중 한 편인 이 시에 대해 안도현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궁핍한 시인이 가장 부자로 산다.˝
함민복 시인에게 시는 ˝쌀˝이고 ˝국밥˝이고 ˝소금˝이다. 이리 먹을 게 있으니 부자 아니고 무엇이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