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1 매일 시읽기 34일
눈썹
ㅡ1987년
- 박준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 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 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발문을 쓴 시인 허수경은 자신은 ˝다른 시인의 시들을 해설할 수 없다˝며 ˝다만 읽고 느낄 수만 있다˝고 썼다. 그의 느낌으로 써내려간 발문은 독자들에게 박준의 시들을 더 마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 구실을 해준다.
그럼에도 나에게 박준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후루룩 넘겨 보니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침표가 전혀 없다는 것.
<눈썹>이 자전적 이야기라면 83년생 박준이 다섯 살 때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리산 눈썹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저녁 밥상을 엎어도, 아이들은(어린 누이와 나)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닌다˝ 아이들이라 그럴 수 있고, 아이들이라 용납이 된다. 마누라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이 시에 대한 허수경 시인의 느낌글이 좋다.
˝유사 신화 속의 어머니가 고독하다면 일상 속의 어머니 또한 고독하다. 어쩌면 일상 속의 어머니가 더 고독할지 모른다. ˝눈썹 문신˝을 이마 위에 지리산처럼 얹고 있는 어머니, 아마도 매일매일 눈썹을 그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문신을 시도한 어머니가 차리는 것이 매일의 밥상이다. 매일의 밥상을 위하여 그러니 어머니는 이마에 지리산을 얹고 잇는 것이다. 그놈의 밥상! 내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밥상은 차려져야 하고 아이들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니니. 밥상은 비워지기 위해서 차려지는 것이다. 차려지고 비워지고 그 흔적을 설거지하는 매일의 범박한 일상 속에서 아이들은 철모르게 뛰어다니다가 문득 어른이 된다.˝(137)
˝그놈의 밥상!˝ 이 대목에서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아, 코로나 19로 외식을 삼가야 해서 차려내야 했던 삼 시 세 끼를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밥상을 위해 눈썹 문신을 하는 대신, 날마다 같은 시각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가볍게) 아침상을 준비한다. 출근하듯이. 그리고 ˝엄마는 백수야˝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옆지기에게 ˝나는 월급 없는 주부 노동자야˝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