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201019 매일 시읽기21일

천장호에서
-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의 <<그곳이 멀지 않다>> 에 실려 있는 첫 시다. 이 시집은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되었고 2004년에 재출간되었다. 내가 가진 시집은 2004년판이다.

나는 나희덕의 시집을 세 권 가지고 있다. 이 시집은 정확히 언제 구매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입만 해두었다 오늘에야 펼쳤다.이런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윽.

나희덕의 시는 읽으면 그냥 좋다. 어렵지 않은데 쉽지만도 않고, 무겁지 않은데 가볍지만도 않다. 아무튼, 좋다. 시인의 말을 읽고서 아, 내가 이 느낌을 사랑했던 거구나를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나는 유난히 울음이 많았다. 노을 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도 눈가에 물기가 맺혔고, 심중의 말을 간곡하게 몇 마디 꺼내려 하면 울먹임이 앞을 가로막았다. 너무 아름답거나 간절한 것을 보며 왜 어린 나이에 환희보다 아련한 슬픔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툭하면 터지던 울음이 문학이라는 불꽃을 지피는 주된 연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상적 낭만주의자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내 문학이 만물에 대한 눈물 글썽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부터 그 물기를 말리고 식히는 데 애를 썼다.˝(135)

˝내 시의 팔 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내 안의 슬픔이 다른 슬픔과 만나 서로 스미고 어루만질 때 흘러나오는 언어. 또는 존재와 존재가 서로 삐걱거리고 뒤척이며 내는 소리들. 시는 그런 다양한 울음소리를 받아적은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시인이 귀울여야 할 것은 만물이 내는 울음소리의 섬세한 리듬과 결일 것이다.˝

천장호는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에 있는 인공 저수지이다. 천장호에는 길이 207m의 출렁다리가 있다고 한다.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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