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노의 비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228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손재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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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매일 시읽기 16일

<<두이노의 비가>> 제2 비가

<<두이노의 비가>>는 총 열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릴케는 1912년부터 1922년까지 10년간 이 작품에 공을 들였다. 시인 자신도 "비가는 나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두이노는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지역이다. 릴케는 이곳에 성을 둔 후작 부인의 초대를 받아 이 성에 얼마간 머문다. <<비가>>는 이때 탄생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슬픈 노래'라니. 제1 비가, 제 2비가를 완성했을 당시 릴케의 나이는 37세였다.

열 편 모두 길이가 길고 난해한 편이다. 주석 없이는 이해 불가한 시구들도 제법 있다. 그럴 때는 시구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시를 읽는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이고 탄성이 터지는 구절들에서 숨을 고르고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느끼는 순간 흩날리고 만다. / 아, 내쉬는 숨결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우리들." 언젠가 사라지고 말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들. 나름. 열심히.

"오고 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삶의 무상함을 견디는 법. 릴케가 말한다.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오늘은 <제2 비가>를 올린다. ​

​제2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모든 천사는 두렵다. 아, 그러나 그대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영혼의 새들이여,
그대들을 알기에 나는 그대들을 향해 찬미한다. 토비아의 시대는 어디로 갔는가
그날은 찬란한 천사 하나 여정을 위해 가볍게 꾸며 입고,
두려운 모습 조금도 보이는 일 없이, 소박한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호기심에 찬 토비아도 젊은이끼리 대하듯 그렇게 바라보았건만)
그러나 이제, 만일 대천사, 그 위험한 존재가 별들 너머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우리를 향해 내딛는다면, 우리의 심정은
높이 고동치며 우리를 파멸시키리라. 그대들은 누구인가?

그대들은 창세의 걸작, 조화의 총아,
창조의 산맥, 아침 햇살에 빛나는
지붕의 당마루, 만발한 신성의 꽃가루,
빛의 굴절, 복도, 계단, 왕좌,
본질의 전당, 환희의 방패, 폭풍 같은
황홀의 소용돌이, 그러나 불현듯 저마가 하나가 되면
<거울> , 넘치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얼굴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거울.

그러나 우리는 느끼는 순간 흩날리고 만다.
아, 내쉬는 숨결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우리들. 불타 사그라지는 나무처럼
우리의 향은 시시로 희미해진다. 그러한 때 누군가 말하는 자 있으리라.
그래, 너는 내 핏속으로 스며드는 게다. 이 방이며, 봄이
너로 하여 충만해진다고 . . . . . . 그러나 무슨 소용 있으랴.
그렇게 말하는 자도 우리를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의 속에서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우리는 사라져 간다.
그리고 저 아름다운 여인들,
오, 누가 그들을 멈출 수 있으랴? 끊임없이
얼굴에 감도는 고운 빛도 사라져 가나니. 새벽녘 풀에 내린 이슬처럼
우리의 것은 우리를 떠난다, 뜨거운 음식으로부터
열기가 날아가듯이. 오 미소여, 어디로 가는가? 오, 우러러보는 시선이여
끊임없이 용솟음치며 사라져 가는 뜨거운 마음의 물결이여 ㅡ
아,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라져 녹아 들어가는
세계 공간에는 우리의 맛이나 향이 배여 있을까? 진실로 천사들은
오직 자기들의 것, 자기들로부터 넘쳐흐르는 것만을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아니면 가끔은 실수에서라도 조금은
우리들의 본질도 함께 섞여 들어갈까? 천사들의 표정에 깃드는
우리 것이란 다만 임산부의 얼굴에 스미는
모호함 같은 그런 것일까? 그러나 천사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향한 회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눈치 못 챈다(어찌 그러한 하찮은 것을 알아채랴).

연인들은,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밤의 대기 속에서
오묘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그러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는 듯싶다. 보라, 나무들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도 여전히 서 있다. 우리들만이
이 모든 것을 스쳐 지난다. 오고 가는 바람처럼.
그리고 만물은 하나같이 우리의 일을 침묵하고 있다.
치욕으로 여김인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희망에서인가?

연인들이여, 어울려 만족하는 그대들이여,
너희들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너희들은 손을 꼭 잡는다. 그것으로 증명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 자신의 두 손도 서로를 느끼고, 혹은 그 두 손 안에
지친 얼굴을 묻고 쉬는 일도 있다. 그것이 얼마간은
내 스스로를 감지하게도 한다.
허나 누가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연인들이여, 서로가 상대의 환희 속에서
성장하는 너희들. 끝내는 압도되는 상대가
<이제 그만>, 하고 애원하는 너희들ㅡ서로의 애무 속에서
풍년 든 포도처럼 풍요하게 영그는 너희들.
다만 상대가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소멸하는 너희들. 너희에게 묻는다. 우리들 인간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
너희들이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은, 애무가 시간을 멈추기 때문이다.
애정 깊은 너희들이 가리고 있는 그 장소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 아래서 순수한 지속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희들은 서로의 포옹이 영원하기를 약속하리라.
허나 첫 시선의 놀라움과 창가에서의 그리움을 이겨 내고,
함께 거닐던 <첫> 산책, 단 한 번뿐이던 그 정원에서의 산책을 견뎌 냈을 때,
연인들이여, 그때에도 너희들은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맛대고 서로 마실 때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놀란 적은 없었던가? 거기서 사랑과 이별이,
마치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듯,
가볍게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얹혀 있지 않는가. 상기해 보라, 두 사람의 그 손을.
체구에는 힘이 넘쳐 있음에도 그 손은 얼마나 강압의 기미없이 편하게 포개져 있는가를.
절제하고 있는 그들은 <그렇게> 우리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신들은 우리에게 더욱 강하게 힘을 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들이 하는 일이다.

우리도 순수하고 조촐하고 좁다란 인간적인 세계를,
강물과 암벽 사이에 우리의 한 줄기 기름진 땅을
찾아낼 수 있으련만. 우리의 심정은
지금도 예나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넘어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그림 속에서도, 더 위대한
절도를 지닌 기품 있는 육체에서도
그 격정을 잠재울 힘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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