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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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읽기 14일

​야생 붓꽃
- 루이스 글릭(Luise Gluck)

​내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라.
당신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머리 위, 소음들, 소나무 가지들의 자리바꿈
그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흐린 태양만이
메마른 흙 위에서 깜박거릴 뿐.

끔찍한 일이다, 어두운 땅속에 묻혀
의식을 가지고
생존한다는 것은.

그때 끝이 났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한 영혼으로 존재하면서도 말을 할 수 없던 상태가
갑자기 끝나고, 딱딱했던 흙이
약간 위로 부풀었다. 그러자 내게 새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키 작은 관목 속으로 내리꽂혔다.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통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내가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잊혀진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내 삶의 중심으로부터
커다란 물줄기가 솟아났다.
하늘색 바다에
깊고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류시화 옮김)

​The Wild Iris

​At the end of my suffering
there was a door.

​Hear me out: that which you call death
I remember.

​Overhead, noises, branches of the pine shifting.
Then nothing. The weak sun
flickered over the dry surface.

​It is terrible to survive
as consciousness
buried in the dark earth.

​Then it was over: that which you fear, being
a soul and unable
to speak, ending abruptly, the stiff earth
bending a little. And what I took to be
birds darting in low shrubs.

​You who do not remember
passage from the other world
I tell you I could speak again: whatever
returns from oblivion returns
to find a voice:

from the center of my life came
a great fountain, deep blue
shadows on azure seawater. ​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리스 글릭(77세)의 시다. 나는 이 시인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여성이 상을 탄 것은 환영이고, 미국인으로서 10번째인 건 유감이다. 노벨상, 그 중에서도 문학상은 지나치게 서양에 치우쳐 있다.

우리나라에는 류시화 시인이 올해 출간한 #마음챙김의시(수오서재) 시집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고, 조이스 박의 <<내가 사랑한 시옷들>>(포르체)에 다른 시 한 편이 소개 되어 있다. 두 시집 모두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노벨상에 선정된 후 스웨덴 한림원이 시인과 한 통화가 화제인가 보다. 노벨상 관계자가 글릭이 추구하는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묻자 글릭은 자신은 아침 커피를 마셔야 하니 2분의 시간만을 허락하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건 지나치게 거대한 문제고, 여기는 아침 7시밖에 안 됐다. 그에 대해선 생각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죠. 그렇지만 2분이 지나지 않았나요?"

아주 시건방진 인터뷰로 보일 수 있겠으나, 자신이 누리는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노벨상 상금으로 원하는 집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2009년에 글릭에 관한 논문을 쓴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굉장히 언어가 간결하고, 언어가 투명해서 어려운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간결하고 투명한 언어 속에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출처: 조선일보)

​이 시는 첫 두 행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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