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민음사 세계시인선 1
보들레르 지음, 김붕구 옮김 / 민음사 / 197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201011 매일 시읽기 13일

#음울 Spleen
- #샤를피에르보들레르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길지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ㅡ 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악의꽃 제1부에 실려 있는 4편의 <음울Spleen> 중 맨 끝 편이다.

민음사에서 세계시인선으로 1974년 출간된 <<악의 꽃>>은 번역문과 원문이 함께 실려 있고, 문학 박사인 김붕구 교수의 상세한 해설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1994년의 개정 증보판 1쇄이다. 해설은 글자 크기가 작고, 외람되지만 옮긴이의 우리말 글쓰기가 원활하지 않아 읽기에 쉽지 않다.

#악의꽃 초판은 1857년, 보들레르 나이 37세 때 출판되었다. 총 101편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861년 출간된 증보판에서는 6편이 삭제되고 36편이 추가되어 총 130편 6부로 구성되었다. 초판 출간 당시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뉜 이 시집은 몇몇 과도한 표현들로 법원에서 6편 삭제라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보들레르는 이 시집을 두고 ˝이 혹독한 책 속에, 나는 내 온 심혼을, 내 온 애정을, 내 온 종교(변조된)를, 내 온 증오를 집어넣었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

나는 20대 때 보들레르를 읽고 구체적으로 뭐가 좋은지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고뇌와 절망이 읽혀 좋아했다. 보들레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반사회적이고 반정통적이었다. 방탕한 한량이었고, 고립된 외톨이였다(쉬운 말로 왕따). 보들레르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교 접점을 못 찾은 인물로 보인다. 짧은 생(46세)을 살다간 것이 그에게는 다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음울은 이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였다. 마지막 두 행은 이 시의 압권이다.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희망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권태의 동굴. 이 시를 압축하라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사는 동안 이런 때를 마주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신은(나는 신을 믿지는 않는다) 인간에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희망이 박쥐처럼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만 있을 때 사람들은 무엇에 기대 하루하루 살아가나. 그런 게 궁금해지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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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0-10-1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럴수럴수. 황현산님의 2016년 리뉴얼 번역본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니. 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