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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시작 ㅣ 창비시선 112
박노해 지음 / 창비 / 199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201005 매일 시읽기 7일
#바람 잘 날 없어라
- #박노해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박노해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에 실려 있다. 박노해는 대학시절 시보다 노래로 먼저 다가온 시인이었다. 노동자 시인. 현장 노동자가 시로 풀어내는 노동 현장과 노동자의 삶은 구름 잡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의 풍경이었다.
이 시집은 대학 졸업 후 학교 인근 서점에서 알바를 할 때 사장님이 읽어보라며 내민 책이다.
책도 인연도 흐른다. 둘 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지금까지는 맺는 것보다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생각이 든다. 인생의 어느 한때, 나와 관계를 맺은 책과 인연. 그땐 모르고 지냈지만 그들이 삶을 버텨내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것.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는 것.
저 시집이 손에 들어온 날. 나는 많이 아프고 많이 외로웠던가 보다. '바람 잘 날 없어라'를 읽고 내가 쓴 글. "가슴을 죄어왔다. 눈물날 만큼이나 공감을 했다고나 할까. 나 또한 너무도 끈질지게 살고픈 사람이다."
30여 년이 흐른 오늘. 나 살아 있음에 박수를 쳐주리. 박노해의 시는 어렵게 읽히지 않아 좋다. 사장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