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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평점 :
20200930 매일 시읽기 2일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 메리 올리버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시 읽기 100일 프로젝트 돌입.(과연 지켜질까??)
한가위 전날. 전을 부치고 김을 굽고 못다 본 장을 보고 저녁을 차려서 먹고 시댁을 벗어나 커피숍에 앉아 시를 읽는다.
메리 올리버를 이제야 알게 된 건 아쉬운 일이고, 이제라도 알게 된 건 다행한 일이다. <뉴욕 타임스>가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 인정하고, 김연수 작가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고 한 시인을 여지껏 모르고 있었다는 건, 내가 그만큼 시와 먼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증거다.
이 시는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연을 이 시인처럼 멋들어지게 표현할 재간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시인이 노래하는 글들을 감상하고 감탄할 마음의 준비는 된 독자 같다. 그 지점에서 작가에게 연대의식을 느낀다.
지금은 달력이 가을을 말하기 시작하는 때. 베란다로 투과되는 눈부신 가을햇살에 식물들이 빛꽃을 피우는 때. 이런 것은 추억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늘 가까이 있다. 다만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오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추석 전날이니, "통장에 돈 한 푼" 없어도 야생 굴뚝새처럼 시를 노래하련다.
"악천후 속에서 개인의 정신과 우주의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 다만 감히 내 의견을 말하자면, 그런 교감은 푸른 하늘의 축복 아래 햇살 가득한 세상이 평온을 구가하고 바람의 신이 잠들었을 때, 그 조용한 순간에 몰입하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쉽지 않을까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모든 겉모습과 부분성의 베일을 들추고 그 속에 숨겨진 걸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태양의 장미꽃잎들 속에 서서 바람이 벌의 날개 아래서 졸면서 내는 소리보다 크지 않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강력한 가정에(심지어 확실성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평온한 날씨도 엄연한 날씨이며 보도할 가치가 있다.(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