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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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7 

<<무엇이든 가능하다 Anything is possible>>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정연희 옮김/문학동네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올해 완독한 첫 소설
경기도 화성 봉담으로 이사온 지 6개월 만에 봉담도서관(얼마 전에야 부분 개관)에서 대출한 첫 책(구매 욕구를 당기는 책)

이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닌 나의 문장이 있었다.
​​
‘인간은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
‘괜찮지 않을 때는 목놓아 울어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

드문드문 무시로 등장인물들 때문에 마음이 울컥해지거나 눈시울이 불거지곤 했다. 등장인물들 때문이라지만 실은 그들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작품을 처음 접한 먼 나라 독자로서 말하건대, 나는 이 저자의 애독자가 될 것 같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더 읽어 보고 싶어졌으니까.

미국 일리노이주 앰개시를 배경으로 총 아홉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소설 속에는 상처 입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상처의 종류와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의 상처라는 공통점이 있다. 가난과 부모와 타인과 국가가 입힌 상처들이다.

세상에 나서 상처 없는 삶을 살다 죽는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채기든 피투성이든 크고작은 상처를 입고 산다. 그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밥 먹는 일보다 더 자주 일어날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는, 내가 입었다고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치유가 잘 되지 않는다. 인지했을 때에도 치유가 쉽지는 않다. 치유가 되건 말건 죽지 않는 한 살아야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처들을 껴안고 ˝모두 그 시간을 버티며 통과했다.˝(11) 나는 이 문장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파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는데, 책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만큼 서술이 매력적이었다.

이 소설은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이야기다.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어른이고 싶어 애를 쓰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쉰둘. 여전히 낯선 나이. 앞으로 먹는 나이는 계속 낯설 듯하다) 어른다운 어른이 무엇인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십대와 이십 때만큼은 아니지만 인생의 많은 것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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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토미 거프틸) 나이가 들수록ㅡ그는 이미 나이가 들었다ㅡ자신이 선과 악의 이 혼란스러운 다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인간은 애초에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다.˝(22)

​그럼에도, 불확실한 어른이 어른스러울 때가 있다. 중년의 패티 나이슬리가 열다섯 살의 사춘기 소녀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할 때처럼. ˝나한테 너를ㅡ다른 사람을ㅡ쓰레기라고 부를 권리는 없어. / 물론 화가 났지. 네가 내게 정말로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그 말을 할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냐.˝(81)

또한 전쟁에 참전했다 인간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의 삶도 자식들의 삶도 돌보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애어른 피트에게 동네어른 토미 거프틸이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말할 때처럼.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ㅡ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ㅡ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41)

미안해하다는 것, 자책한다는 것,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 그것들은 우리를 어른답게 성장하게 하는 마음들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하면서도 행복했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지만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보다 많은, 나와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공감대가 컸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연민이 정이 불쑥불쑥 솟구쳤다.

˝진입로로 접어들던 패티는 나갈 때 켜두었던 불빛을 보았고, 그 순간 루시 바턴의 책이 패티를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책이 그녀를 이해한 것이었다.˝ (80) ​

내가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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