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 시애틀은 아직 지난 겨울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잔뜩 찌푸린 쌀쌀한 공기. 덕분에, 날 좋은 주말, 공원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계속 유예된 희망사항으로만 남고 있다. 5월에 비해 책 읽는 속도도 조금 더뎌지긴 했는데, 물론 그렇다고 새 책으로 눈이 안 가는건 아니다. 짬짬이 챙겨놓은 주목할만한 책들을 다시 추려본다. 

The Reading Promise
- 회고록 / Alice Ozma / Grand Central Pub. 

Alice 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Alice 의 아버지는 100일 동안 매일 밤 Alice 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을 한다. 100일 후 이들은 약속이 이뤄짐을 축하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지만 책 읽어주기를 그만둘 이유는 찾지 못한다. 그렇게 계속된 책읽기는 Alice 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이 책은 아버지가 읽어주었던 책들과, 궁극적으로는 그 속에서 아버지와 딸이 나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What Alice Forgot
- 소설 / Liane Moriarty / Amy Einhorn Books 

공교롭게도 이 책의 주인공 이름도 Alice 다. 29살의 Alice 는 행복하다. 남편은 그녀를 끔찍히 사랑하고, 그들의 첫 아이도 곧 태어날 때가 된다. 새로 산 집은 허름하지만 그 집을 깔끔하고 멋진 공간으로 꾸며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체육관에서 쓰러졌다가 깨어났더니 자신이 이미 39살이며, 아이는 이미 셋이나 낳았고, 집은 잘 꾸며져 있으며, 남편과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걸 발견한다. 10년의 기억 상실. 과연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이며, 이 망각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걸까. 


Miss New India
- 소설 / Bharati Mukherjee / Houghton Mifflin Harcourt 

한국의 70년대 시골소녀 상경기의 인도 버전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주인공은 인도의 한 시골지방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이미 정혼자가 정해져 있는 중하위 계급 집안의 딸이다. 그녀가 부모가 정해 놓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도시(벵갈로르)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최첨단의 도시에서 그녀는 어느 미국 회사의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며 금새 그녀의 부모보다도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으례 상상할 수 있듯) 대도시의 삶은 평탄할 수는 없는 법... 소설 자체의 재미보다도 현대 인도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Miles to Go
- 소설 / Richard Paul Evans / Simon & Schuster 

모든 것을 다 잃은 남자가 여행을 떠난다. 며칠 후,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그로 인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능력마저 잃게 된다.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Angel 이라는 이름의 한 여자가 나타나 아무 이유 없이 그를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주기 시작한다. 남자는 조금씩 회복해가며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는 자신이 자신을 도와준 이 Angel 이라는 여자의 치유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상처 입은 이들이 다른 상처 입은 이들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Marriage Confidential
- 문화 / Pamela Haag / Harper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낭만적 관점은 이미 동화 속에서나 가끔 등장하는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이혼 역시 새로울 것은 없지만, 대부분의 결혼 생활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아니다. 오늘날의 결혼은 보다 역할극에 가깝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과 결혼생활에 대한 허무감이 자리잡고 있는... 그렇다면 진정, 오늘날의 결혼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던져보는 질문이다. 


Oceana
- 환경 / Ted Danson, Michael D'Orso / Rodale Press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다. 태고의 생명이 바다에서 자라나 점차 육지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고, 이제 그 후손들은 바다를 오염시켜 그 안의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Ted Danson 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바다 환경 지킴이로 활동해온 환경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책의 부제로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Our Endangered Oceans and What We Can Do to Save Them. 


Emotional Currency
- 경제 / Kate Levinson / Celestial Arts 

여성을 타깃으로 한 책이지만, 나도 꽤 솔깃한 내용이다.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 주체로 나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험은 꽤나 짜릿한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삶을 일구어가는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는, 상황에 따라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심리치료학자인 저자는 경제권의 이러한 감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돈과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어 나갈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름의 쾌감과 카드명세서의 절망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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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6-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올려진 책은 모두 흥미로워요. 처음 소개된 책부터 아 읽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번역서가 나온다면 저는 아마도 맨 밑의 두권을 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죠. 가장 읽어보고 싶은건, 두번째에 올려주신 [What Alice Forgot] 이에요. [Miles to Go]는 표지가 너무 쓸쓸해요..

무해한모리군 2011-06-21 16:25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올라온 책들은 정말 관심이 가네요.
두 앨리스 이야기도 너무 궁금하고, Miles to Go의 남자분은 여행을 가는지 천사아가씨의 이야기는 뭔지 궁금하네요.

turnleft 2011-06-22 02:22   좋아요 0 | URL
능력만 되면 제가 다~ 읽어보고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번역서가 나오는게 아무래도 빠르겠죠? ^^;

... 2011-06-2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What Alice Forgot을 최근에 보관함에 넣었어요. 어디선가 추천도서로 올라온 것을 보고 넣기 햇는데 , 기억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드라마의 흔한 소재)... Bharati Mukherjee, 저 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은 없는데 요즘에 이름이 눈에 띄어서 궁금해하고 있는 중이구요. ^^

turnleft 2011-06-22 02:26   좋아요 0 | URL
사실 기억상실이라는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소재를 소비하는 방식의 문제였죠.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유도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중요한 측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근데, 어디서 추천도서로 올라왔을까요?

Bharati 는 사진을 보니 중년의 여성이더군요. 신인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책들을 써 왔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 2011-06-22 23:43   좋아요 0 | URL
확실하게 기억나는 데 하나는 아마존의 summer reading 이예요. 신간이라서 하드커버만 존재하니 그림의 떡이네, 하며 보관함에 밀어넣었죠.

Bharati Mukherjee는 인도 여성들의 삶에 대해 주로 쓴다고 들은 것같아요. 현대 인도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라빈드 아디가나 비카스 스와루프도 괜찮아요.

turnleft 2011-06-23 02:30   좋아요 0 | URL
오와.. 전문가다운 답변. 멋져요 +_+

무스탕 2011-06-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이 되도록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 정말 멋진 아빠에요!
올려주신 책들이 대부분 여성적 성향을 띈 책들 같은데요, 턴님? ^^

turnleft 2011-06-22 02:26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저의 독서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알라딘의 몇몇 분들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ㅋ

hnine 2011-06-2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iles to go란 소설의 내용 요약을 읽으며 이건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로망이 무엇인가에 대한 은유적인 내용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스트의 시 중에 나오는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 이라는 구절도 생각나고요. 저보고 한권 고르라면 그 책을 고를 것 같네요.

turnleft 2011-06-23 10:24   좋아요 0 | URL
음.. 생각치 못한 관점인데요? 하긴 생각해보면, 결혼과 여행이 어울리는 상징이긴 하네요. 아마 hnine 님이 조만간 읽으실 것 같은데요? ^^

hnine 2011-06-2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주문하려고 검색해보니 신간이어서 그런지 Library binding만 나와있어서 책값이 좀 비싸군요 ㅠㅠ 페이퍼백 나올 때를 기다려야겠어요.

turnleft 2011-06-23 10:25   좋아요 0 | URL
ㅋㅋ 위에 댓글 다는 사이에 쓰셨네요. 역쉬 주문 들어가시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