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금요일 오후 5시. 얼추 일 정리해 놓고 주말을 앞둔 노닥노닥 분위기로 퇴근시간까지 버텨 보려고 준비 중이다. 책상 위에는 어제 도착한 책 세권(The Box / Click / To the Wedding)이 놓여 있다. 얼마 전 어쩌다보니 Amazon Prime 1년 멤버쉽을 가입하게 되었는데, 멤버쉽이 유지되는 동안은 무료로 2일 배송을 해주니 Amazon 에서 책 주문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저 책들은 또 언제 읽지 -_-;
기록을 살펴보니 올해 읽은 책이 고작 9권 밖에 안 된다. 3권이 영어책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저조한 기록 -_- 신경 쓸 일들이 많아지니 확실히 시간이 생겨도 책에 집중하는 정도가 많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 다 잊어버리기 전에 간단히라도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본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소설 / 로버트 M. 피어시그 / 문학과 지성사 / 2010.12.14 ~ 2010.12.30 / ★★★★★
지난해의 마지막을 장식한 책이다.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꽤 여러 곳에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깨달음 같은 것을 준 책이다. 특히 개인이 세계를 마주하는 자세 같은 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신경쓰는 것(아마 원문에서는 really care about it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이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하는 것과, 무언가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의 차이.
Unaccustomed Earth
- 소설 / Jhumpa Lahiri / Alfred a Knopf / 2011.01.01 ~ 2011.01.22 / ★★★★
올해 첫 책이자, 내가 읽은 줌파 라히리의 첫 책이기도 하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남성 독자인 나에게 가슴 깊히 여운이 남는 글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민자의 2세로서 겪게 되는 문화적, 세대적 차이가 더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인도인들(모두 남성)이 가부장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는데, 그게 단지 개인의 인상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깔려 있는 코드 같은 것들이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영원한 전쟁
- 소설 / 조 홀드먼 / 행복한 책읽기 / 2011.01.23 ~ 2011.01.30 / ★★★★
스케일로만 치자면 이만큼 장대한(?)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작품도 드물거다. 워프를 한 번 할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년을 건너뛰어 버리니 그 사이 인류가 진화를 거듭해 결국 새로운 존재 형태를 취함으로써 전쟁이 끝난다는 설정도 아주 말이 안 되는건 아니다만... 아무래도 아주 몰입해서 읽기는 어려운 스토리라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그 상상력, 그리고 시공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멋지지 않은가.
모래의 여자
- 소설 / 아베 코보 / 민음사 / 2011.01.31 ~ 2011.02.03 / ★★★★★
하, "관능적"이라는 표현은 진짜 이럴 때 쓰는거구나 싶다. 흘러내리는 땀, 엉겨붙는 모래알들, 그리고 빠져나가려 할수록 미끄러져 내리는 모래구덩이. 언젠가는 진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 모으고 말테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윤리 / 피터 싱어 / 산책자 / 2011.02.04 ~ 2011.02.09 / ★★★
꼰대 할아버지, 참 재미없이 산다 싶었다. 개인의 윤리라는 좁은 프레임에 시선을 가둬버리니 쳇바뀌 돌듯 "윤리적인 삶"을 호명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겠지. 제목 그대로의 비유를 가져와서 물에 빠진 아이를 "안 구하는 것보단 구하는게 낫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이들이 자꾸 물에 빠질까"라는 질문이 없다면 그건 과연 또 윤리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칭송하는 그 윤리적인 거부들은 과연 "왜 아이들이 자꾸 물에 빠지는" 이유와 과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기부라는 잣대로 윤리적인 삶을 논하는 것이 얼마큼 의미가 있을까.
The Selected Works of T.S.Spivet
- 소설 / Reif Larsen / Penguin Press / 2011.02.09 ~ 2011.03.04 / ★★★★
사실 별 4개도 굉장히 후하게 쳐준거다. Part 3 에 들어서는 거의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으니까. 독특한 형식과 캐릭터, 삽화는 훌륭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산으로 가는 스토리는 앞부분과 다른 사람이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밀도가 낮았다. 덕분에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느려져 책을 끝내기가 진짜 힘들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수필 / 한창훈 / 문학동네 / 2011.03.05 ~ 2011.03.09 / ★★★★★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맛있었다. 그리고 배고팠다.
Reality is Broken
- 게임 / Jane McGonigal / Penguin Press / 2011.03.10 ~ 2011.04.17 / ★★★★
절반 정도는 회사 일 때문에 읽게 된 책인데, 나름 신선했다. 현재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 하나하나를 본다기 보다는, 게임이라는 포멧 자체를 잘 활용하여 현실을 바꿔나가는데 활용해보면 어떨까.. 라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다소 산만해지고, 뭐랄까 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본다는 느낌도 계속 받았는데, 실험적인 시도인만큼 감안하고 읽으면 되겠다.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 소설 / 사샤 스타니시치 / 낭기열라 / 2011.04.17 ~ 2011.04.29 / ★★★★★
최고였다 ㅠ_ㅠ
그런데, 왜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책들 중 다수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건지...
모든 것의 나이
- 과학 / 매튜 헤드만 / 살림 / ★★★★
잡학다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마야 고대 달력을 해석하는 방법에서부터, 피라미드의 건축 연대 알아내기, 탄소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유물 연대 측정법과 우주의 나이 계산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의 "나이"를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해준다. 다만, 어느 정도 이공계 쪽 사전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거의 다 읽었다) [서재 결혼시키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긴 한데, 왠지 위화감이 느껴지는건 나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