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Arch 님이 콕 찝었을 때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난 감정의 기복이 적고 무던한 편이다. 전에 한 선배와 밥을 먹다가 아주 평이한 톤으로 "아, 맵다" 라고 했더니, 그게 어디 매운 사람이 하는 표현이냐고 한참을 웃더라. 전쟁에서 총을 맞아도 "아, 맞았다" 이러고 말 놈이라면서. 

요즘 읽고 있는 [The Things They Carried] 의 작가 Tim O'Brien 이 딱 나 같은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아비규환 같은 전쟁터의 모습을 이토록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관조하듯 써내려 갈 수도 있구나. 영화로 치자면 사방에서 불길이 솟고 총알이 날아다니며 전우들이 쓰러져가는 장면을 아무 소리도 없이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보여주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이 문장들은 감각을 자극하고 심장을 팔딱팔딱 뛰게 하는 대신, 잉크가 스며들듯 번져들어 그 문장 속에 내가 잠겨 들어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



You're pinned down in some hellhole of a paddy, getting your ass delivered to kingdom come, but then for a few seconds everything goes quiet and you look up and see the sun and a few puffy white clouds, and the immense serenity flashes against your eyeballs--the whole world gets rearranged--and even though you're pinned down by a war you never felt more at peace.

P.35 ~ 36

아, 그 완벽한 정적과 평화로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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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잖고 과묵하신 타입이군요?ㅎㅎ

turnleft 2010-03-24 11:46   좋아요 0 | URL
아뇨, 딱히 과묵하진 않아요. 그냥 기복이 좀 적은 편이랄까..

무스탕 2010-03-2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아요, 나중에(혹은 지금) 애인한테 '아~ 좋다' 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실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turnleft 2010-03-24 11:47   좋아요 0 | URL
어랏, 다른 말이 더 필요한가요? ^^;

프레이야 2010-03-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타입인 건
재작년 만나뵙고 눈치챘지요.^^
참 좋던걸요, 전.
총맞고도 아 맞았다!,라구요? ㅎㅎ

Alicia 2010-03-24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그때 그런타입인지 몰랐어요.제가눈치가 좀없어요ㅎㅎ그래도 정중하고 따뜻한 분인건 알았어요ㅎㅎ

turnleft 2010-03-24 11:4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아플 때도 아프다는 말 잘 안 해요.
어머니는 미련 곰탱이 같다고도 하던데 -_-;

리샤 2010-03-25 23: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탱이! ㅎㅎ
덧글주신거 완전 잘못이해해가지구 한참헤매고..;;
어우 제가 곰인가요? ㅜㅜ


turnleft 2010-03-27 02:17   좋아요 0 | URL
겨울이라서 그래요. 봄이 왔으니 곰들은 이제 좀 덜 헤매지 않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