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 대한 답글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글로 올려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렇게 이름을 콕 찝어서 글을 올려주시니 매우 큰 부담감을 안고 답글을 쓰게 됩니다. 사실 온라인 논쟁이라는게 서로간의 메울 수 없는 간극(가치관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까요)만을 확인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기에, 특정인에 대한 반박보다는 이슈가 되는 주제 단위로 접근을 원했습니다만, 이렇게 또 답글을 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요.

일단 볼빨간 님께서 올려주신 글이 방대한만큼, 제 나름대로 그 흐름을 추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논점이 좀 명쾌해질 것 같습니다.


1) 알바, 인턴 등의 문제. 

이건 그냥 제가 비정규직의 개념을 묻기 위해 넣은 말인데 상세히 답변을 해주셨네요. 네, 저도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알바와 인턴 모두 넓은 의미에서 비정규직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턴이 비정규직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 역시 정확하다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이들의 처우 및 노동환경 등도 개선되어야 할 의제가 되겠지요.


2) 도급과 파견의 문제. 

이 부분은 두 갈래로 나누어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업무 지시와 관련해선, 저는 님께서 평상 업무 진행 과정과 “문제가 생겼을 때의” 판단 기준을 혼동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짜증난다는 표현을 썼다고 개인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듯 한데, 직장은 기본적으로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원청 쪽에서 하청 업체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법이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지시 관계가 추후에 실사용자를 가림에 있어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것이지요. 

님께서는 이 선후관계를 계속 뒤집어서 업무 지시를 했으니 위장도급이라는 결론으로 건너뛰고 싶어하십니다. 위장도급인지 여부는 여타 관계를 종합해서(그 중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업무 지시이긴 합니다)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지, 업무 지시 자체가 위장도급의 증거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겁니다. 현대차를 예로 드셨는데, 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한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급여 등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실사용주를 가릴 필요가 생겼던거고, 업무 지시 관계 등을 근거로 실사용주 판결을 내린거지요. 그 외에는 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반대의 결과가 나온 판결이 무궁무진합니다. 님께서 밝히셔야 하는건 업무 지시를 했다가 아니라, 김종호씨가 위장도급(?)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 입니다.

둘째, 저는 여기서 도급과 파견의 문제가 왜 이렇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가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종호씨의 해고가 인트잡과 알라딘의 관계가 도급이냐 파견이냐와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보통 저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파견법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해고 자체가 부당한 것으로 인정되어 실사용자에게 원직복직 명령이 내려지겠지요. 하지만 김종호씨의 해고 과정에서 아직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물론 모든 노동자에게 해고는 부당합니다. 그런 뜻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게 아니란건 아시죠?) 위장도급 여부가 해고 자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근데 왜 계속 이게 논쟁이 될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김종호 씨가 복직 시 인트잡이 아니라 알라딘으로 복직되길 원해서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다시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돌아가기보다 복직 투쟁을 통해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채용되길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김종호씨의 해고가 “부당한” 해고였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겁니다. 알라딘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껀수(니들도 불법 저질렀잖아, 자꾸 버티면 이 문제 터뜨린다)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현 시점에서는 이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발생한 일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알라딘의 비정규직 사용 문제와 연결되어 다시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겠죠. 하지만 현재로서는 곁가지로 미뤄뒀으면 합니다. 


3) 비정규직 사용 자체가 불매의 이유가 된다?

그럼 이제 김종호 씨의 해고가 부당하냐는 논제로 넘어옵니다. 여전히 님께서는 모든 해고는 부당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십니다. 예, 부당합니다. 생계수단을 하루 아침에 잃었는데 어찌 부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해고를 쉽게 만든 비정규직이라는 노동관계 자체에 반대하자는건데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은 정규직이 많아질수록 비정규직이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뒤집어 석유수요가 많아진다는 것은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정규직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말이겠네요. 그래서 불매운동 하자는 건데요.”

하지만, 이 얼마나 원론적인 주장인가요. 님이 간과하고 계신 것은 오늘의 비정규직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이 “현실”의 의미는 두가지 차원에서입니다. 첫째,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인 동시에 자본과 자본의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길게 설명을 해주셨듯이, 자본은 이윤에 의해 추동됩니다. 문제는 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단일 자본이 아니라 수많은 자본들이 얽히고 섥힌 또 다른 경쟁관계라는 겁니다. 자본의 생리에서 적당한 수준의 이윤이란 것은 없습니다. 만약 한 회사가 매년 같은 수준의 이윤을 낸다면 자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이윤율 극대화가 사회적 평균이 된 시점에서, 비정규직 사용은 기업 입장에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12년 전에는 물론 비정규직 없이도 기업들 잘 굴러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 자본이 경쟁하는 자본은 12년 전의 자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자본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둘째, 노동과 자본의 역학관계가 바뀌었습니다. IMF 이전에 비정규직이 없었던 것은 자본이 순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87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노동계급의 힘 때문에 불가능했던 거지요. (그 이전은 자본-노동 관계 라기보다 국가-노동 관계였으니 생략합시다) 87년 이후 여러 복잡한 일이 있었지만 IMF 가 한국의 노동계급에게 결정타를 먹인 것이 비정규직 도입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요. (IMF 직전, 96년 말에도 노동법 날치기로 시도는 했는데, 그 때만 해도 총파업으로 막아냈죠) 다시 말해, 비정규직은 노동과 자본 간의 역학관계의 산물이지 도덕적 판단을 통해 하자 말자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주 옛날 정규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 환경도 존재했었고, 전후 미국처럼 완전 고용과 경제 호황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 자체가 극히 높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중 좋았던 시절을 기준으로 그게 맞다고 주장하는게 과연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중요한건 지금 당장, 오늘의 계급투쟁의 현실에 맞는 주장과 투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말은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철폐”는 개별 사업장의 현안이 아닌 최소한 국가 단위의 슬로건이 된다는 겁니다. 장기적인 싸움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이슈기도 하구요. 님께서는 개별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이 현안이 되지 않는 이유가 정규직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이전에 개별 사업장에서 답이 나오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님께서는 그런 이슈를 끊임없이 알라딘이라는 한 회사에서의 투쟁으로 끌어오려 하시고 계신거구요. 아마 노동 현장에서도 그런 분들이 계시겠지만, 같은 편으로서도 영화에서 흔히 말하듯 “You’re not helping” 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4) 볼빨간 님께서 말씀하시는 알라딘의 문제

아마 이 부분은 볼빨간 님께서는 알라딘의 답변을 전혀 읽지 않으시거나, 아니면 전부 거짓말로 판단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성수기 임시채용을 비수기 정리해고로 뒤바꿔 버리는 것이나, 단기채용이라는 용어를 놓고 발생한 불명확함을 말바꾸기로 단정해 버리시니 말입니다. 제 판단에서는 김종호 씨의 주장과 알라딘의 답변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그 경과를 추정하는게 가능한 것 같은데, 일단 그런 추정에 대해서는 아예 가능성을 닫아 놓고 계시는군요.

일단 김종호씨의 업무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고, 알라딘에서 밝힌 성수기 기간과 겹치는 점 등을 통해 알라딘 쪽의 주장이 개연성이 높다는 판단에 변함이 없다는 것만 명확히 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에 인트잡이 끼어 있으면서 불명확한 일처리 등으로 개별 노동자에게 피해가 전가된 정황은 분명 존재합니다만, 님 말씀처럼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휴지 쓰듯 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돈 버는거 조사장 혼자 먹지 말고 노동자들을 위해 쓰라는 주장도 (그냥 감정적 발언인건 알지만) 너무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다시 말해, 구체적인 상황 판단보다는 한국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알라딘에 투사하고 계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 사태에 대한 저의 문제의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계셔서 이걸 가지고 굳이 저와 계속 논쟁을 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와 별개로, 표팀장님께서 다시 답글을 올리셨는데, 그에 대한 저의 판단은 다시 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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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2-12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추천은 제꺼에요.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주시네요.

turnleft 2009-12-12 09:05   좋아요 0 | URL
의외로(?) 열심히 읽고 계시네요? ^^;

하이드 2009-12-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고, 딴소리 많은 글은 깝깝해서 못 읽어요. 턴레프트님 글은 길어도 딱 하실 이야기만 하시니깐 잘 읽힙니다. ^^

turnleft 2009-12-12 11:41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아는게 딱 요만큼이기도 합니다;;

2009-12-12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09-12-1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turnleft 2009-12-12 11:45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여전히 글을 올릴 때마다 빈약한 밑천이 드러날까봐 가슴이 두근거린답니다 ㅠ_ㅠ

2009-12-12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3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9-12-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요즘 턴레프트님이 멋져보입니다 >_<
(아..물론 예전부터 ^^;;)

turnleft 2009-12-13 02:51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저는 참 맘이 안 좋아요. 괜히 주제 넘게 많은 말을 쏟아내는 것 같기도 하고.. ㅠ_ㅠ

치니 2009-12-1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은 부분 공감되네요. 역시 글은 쉽게 써야 읽혀요. ^-^

turnleft 2009-12-13 02:51   좋아요 0 | URL
제가 딱 이해하는 만큼만 써서 그렇숩니다 ^^;

Sati 2009-12-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쟁이 생기면 분쟁당사자인 갑과 을의 입장이 있고, 이를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이 있겠지요. 제3자의 한 명으로서 턴레프트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원론으로 따지자면, 해서는 안되는 일이 너무 많지요. 며칠전에 ****님이 올려주신 페이퍼에서 담배 말보로 사진이 있더군요. 전 그 사진 한 장에서도 이율배반이 느껴지던데요.

turnleft 2009-12-14 08: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ati 님 ^^

아닌게 아니라, 제 3자로서 담보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계속 불편합니다. 본의 아니게 직접적 논쟁에 휘말리다보니 대립 구도의 한 편에 선 것처럼 된 경황도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저라는 한 개인과 알라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좀 더 깊이들여다보고 싶거든요...

Sati 2009-12-15 22:34   좋아요 0 | URL
그 원론 맞아요. 하지만 전 원론주의자는 아니구요^^. 외람된 말이지만 바람구두님이 불매운동에서 취하신 입장이 원론주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원론을 펴기에 알라딘은 가장 쉬운 상대가 아닌가 싶어서요. 그 점이 계속 걸렸어요...

2009-12-14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5 0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