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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편의 죽음과 그가 느낄 고독 그리고 분노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러나 텅 빈 침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울었다.            _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품성, 감성, 사색, 철학 등등의 어디부터가 동물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걸까 자주 생각한다.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분노가 사실은 '거리'의 문제일 때가 많았다.
다시 안 올 belle epoch야! 경탄은 그저 마치맞은 한날 한시 '빛 에너지' 덕분이기도 했다.
진회색 하늘이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이 '감자탕' 한 그릇에 날아가기도 한다.
밀도, 습도, 통풍, 온도, 산소... 행복의 조건을 나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산다.
그러니까 곰곰 생각해보건데, 나의 사색은 동물적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내 방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로지 나 혼자여야 발화되는 일들.
사람들 사이에서의 온도, 밀도, 공기에서는 있는 줄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싹들이
혼자 있는 시간에 톡, 꽃망울처럼 거짓말처럼 무심하게 터진다. 씨가 맺힌다. 함꼐인 시간에는 몸통만 굵어지는 것 같다.
함께인 시간을 엮어내는 기술만큼이나 혼자인 시간을 엮는 방식도 핵심이다.
어떤 직물이 씨실 없이 날줄로만 엮어지던가.
 

혼자인 시간을 엮는 방식이 고독이다.
혼자인 시간은 진주고 그걸 엮어서 목걸이를 만드는 게 고독이다.
  
 
어떤 공간과 어떤 희망이 일치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 부른다. _ 알랭 드 보통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사. 새로운 집의 정체성은 햇살이다.
나는 직사광선을 쬐지 않으면시들어죽는 양지식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첫집을 구한 이후로, 나는 언제나 '가장 맛난 초콜릿을 가장 나중까지 아껴두는' 사람이었다.
혼자일 떄는 그토록 명확하던 조건들이 사람들과 섞이면 초라하고 희미해지더라.
그 돈으로 무슨... 또래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이 정도면 다들 좋다고... 그런 것쯤이야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해결이...
우발적으로 감행된 외유에서 하늘이 통쨰로 들어오는 창문 앞에서 자고 깨지 않았더라면
반음지식물 생장의 조건을 의지로 넘어서려 노력하다 시들어버린 해바라기가 되었을 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분으로, 편의로, 예산으로 선택된 공간들에서 축축한 불편함이 느껴질 때
가장 맛난 초콜릿이 여전히 상자 속에 있음을 기억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고독을 담뿍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짐이나 격려나 의욕이 아닌, 차가운 계곡물처럼 명료한 확신의 기운에 부르르 떨린다.
요시!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는 평범하게 고독을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화 <위대한 침묵>이나 애니 프루의 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의 '누가 봐도 고독'이 아니라
"나 어제 고독했잖니! 깔깔깔!" 이렇게 수다스럽게 말할 수도 있을 듯한 내용에
공감도 했다가 갸우뚱도 했다가 칫 맘에 안 들기도 했다가 헤 들켜서 민망도 했다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걷기 예찬]은 사유가 얼마나 재미있으면서 정확한 것인지 보여주는, 프랑스적 에세이의 정수다.  
내가 지금 걷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방구석에, 전철이나 만원버스에 구겨져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견딜 수 없어지면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창밖 눈발 속에서 곧 다가올 봄을 읽지 못한다면 당신은 올해도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달력을 펴놓고 지도를 펴놓고, 걷기 시작하자. 떠나든 머물든.
 
[파리를 생각한다]는 저자에게는 걷기의 산물이자, 나에게는 파리여행 계획의 일환이다. 
도시별로 여행계획을 세우고 지도에 그려보는 일을 즐기는데(떠나든 머물든 말이다^^)
그래, 너무 많이 듣고 보고 읽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파리를 꼼꼼히 밟으러 가보기로 했다. 올해 유일한 장기연휴 추석에!
 
[파란달의 카페 브런치] 이것이야말로 고독의 핵심이다. 맛있는 음식은 신발이다.
아마존 조에족의 '옴므파탈' 모닌은 맨발로 잘도 걷는다지만 거기까지는 욕심낼 생각 없다. 현재 나의 좌표에 충실한 상태에서
좋은 신을 신을수록 나의 걷기는 경쾌하고 넓고 깊어질 것이다. 
내가 나를 길들이기에도 필요하다. 맛난 것만 먹여주면 순해진다, 내 심통. 
[산타벨라의 화초 가꾸기]는 보고 열광했다. 그렇쥐 그렇쥐 반맹꽁이 서울아해 나에게는 이런 게 필요했다구요!!!
읽기보다는 가정상비책으로 둘 생각이다. 필요할 떄 휘리릭- SOS--
 
앞으로 읽으려고 챙겨둔 고독의 준비물들도 여럿 된다.
어서 오라,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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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린다는 행위는 위험하다. 말은 내뱉어지는 순간부터 의미로부터 이탈하니, 정확한 과녁에 꽂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거짓을 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아무개 씨에 대하여' 식의 2차 가공품 같은 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데 말이다, 최근에 아주 골때리고 유쾌하고 발칙하면서도 상큼한 오마주를 만났단 말이다. 어찌나 신나던지! ^^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얘기다.

이름 발음만 제대로 하려도 수차례 침이 튀는 결례를 범해야 하고, 페이지마다 그런 이름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왜 하필이면 다 걸작이라서 부담을 주는가? 대표적인 부담보이 도스토예프스키(토씨)와 톨스토이(톨씨), 이들은 문학에 빠져들라치면 피해갈 수도 없는 커다란 대표 장애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의 소설 완독은 고사하고 인물의 관계도만 설명해놓은 책자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장담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당장 들여놓고 싶어진다. 자발적으로, 열성적으로! 

토씨는 한마디로 현대적인 인물이다. 일찌감치 현금서비스를 많이 받아서 개인파산에 이르고 불리한 이율로 현금박치기만 하며 살아야 하는 신용불량자란 뜻이다. 돈계산이 흐리멍텅해서, 아버지가 가진 돈은 빤한데 맨날 '최신 유행 코트가 나왔으니 사야합니다''무슨 무슨 만년필로 공부해야 합니다' 하며 삥땅 뜯는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런데 헛바람은 잔뜩 들어서 힘든 일은 안하고 폼나는 일만 하고 살고 싶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런가?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고 결국은 출판사에서 모셔가도 시원찮을 작가가 '큰 종이에 인쇄할 만큼 글자 채워주고 장당 얼마' 식의 땡처리 신세를 자처한다. 앞에 당근 달아두고 몰아도 서러울 판에 꽁지에 불 피워두고 몰아대는 조랑말 신세다. 그런데도 곧 죽어도 죽일 놈의 자존심은 더 뾰족해서리 돈 꿔주고 도와준 사람은 되도 않는 뒷담화로 갚는다. 제대로 자격지심에 방귀뀐 놈이 성내는 캐릭터다.  

석영중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토씨의 위대함은 모두 빚쟁이 마음에서 나왔다, 맨 돈 꿔달라고 앓는 소리 해대는 편지 쓰면서 문장력은 일취월장했다, 실제로 쫓기는 다급한 마음에 돈 때문에 빚어지는 사람 마음의 변화가 섬세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너무 쫓기다가 구성이 헐렁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캐릭터의 생명력을 잃는 법은 없다, 돈 급하니 도박에 빠져들고 아주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 속 불안한 심리를 제대로 판다......." '죄와 벌은 인간의 도덕성과 어쩌고' 식의 작품 해석이 아니라 작품 속 대사들에서 미묘한 어감을 인간적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아니 이 책이 그렇게 생생한 드라마였나? 당장 내 눈으로 꼼꼼히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오마주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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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프랑스번역의 일인자, 특히 카뮈 연구의 최고봉 김화영 교수가 카뮈 작품의 무대 알제리로 날아간 기행문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또한 아주 바람직한 오마주다. 작가와 작품에 보다 접근시키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 '에이, 이런 거였어? 다 알겠네,' 식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관심과 사고와 대화를 확장시키는 텍스트야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이방인]의 첫 장면 태양 얘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그 태양을, 그 바다를, 그 꽃과 땅과 색을 보여주니 '아, 뫼르소!' 뫼르소가 살아나온다. 뫼르소가 창밖을 내다보던 발코니, 발코니에 어떤 모양으로 앉아 있었던지, 어떤 계단을 어떤 마음으로 뛰어 오르내렸는지... 책 속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카뮈 작품 인용이 되어 있어서 카뮈 전집을 해롭지 않게 훑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 하루키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서로서로 맞물리며 자신의 오마주 역할을 하지만 가장 평이하고 부담없으면서도 핵심이고 상큼한 오마주는 역시 임경선 씨의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인 듯싶다.   

 

세 작가 모두 방대한 작품의 생산자들이고 감히 인류 문학사의 상위 순위에 랭크되는 인물들이니, 오마주라는 좋은 가이드가 필요할 것이다. 줄거리 요약식의 다이제스트라면 권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저 세 작가들에 대해 끙끙대며 "저 산에 오르리라" 즐기기보다 비장한 마음이 크다면, 기꺼이 이 세 권을 먼저 읽으라고 하고 싶다. 본게임에 들어갔을 때 전혀 방해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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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카페에 갈 때마다  PETER CAT 을 상상하게 된다.  스물다섯 살의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카페 '피터캣'의 롤캐비지와 위스키, 담배 연기까지....
하루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쉽게 쓰인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를 쓱쓱 읽다가 카페 주인장으로서의 하루키를 만나니 반가웠다.    

"열 명의 손님이 왔는데 그 중 한 명이라도 내 가게가 마음에 들어 다시 찾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신 그 한 명이야말로 정말 소중히 여길 것. 이는 비단 재즈카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일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고루 적용되는 법칙이다"  

불평하는 손님들이야 언제나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주인의 가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죠. 돈을 버는 것도 적자를 내는 것도 주인이니까.”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전함 바운티>라는 옛날 영화가 있었지요. 이단자들을 모두 배 밖으로 쫓아내 버렸죠, 아마.” (아주 까칠해서 매력적인 카페 주인장 모습의 전형이다 ^^)   

 

 하루키의 '피터캣'이 홍대풍이라면 파리의 노천카페나 물랑루즈 등등은 강남스타일이다.

가령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냈다”고 말하는 사르트르가 한국에 머문다면

홍대가 아니라 서래마을로 갈 것이라는 거다.

카페 ‘셀렉트’의 존재만으로 탄생되는 온갖 인연과 문학과 사랑과 역사가 책이 되다.

선그림의 재치있는 일러스트로 쓰여진 [파리 카페].  


“나는 지금 카페에 가는 길이다.

카페는 중립지대여서 계절이 바뀌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카페는 문학하는 사람의 초연하고도 고상한 영역을 나타낸다.

나는 오로지 카페에서만 정련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_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카페의 커피향기가 사라지면 문학의 향기도 사라질 것이다. 카페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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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위기의 주부들. 여성의 정체성이 무한히 세분화(골드미스, 트랜스젠더, 싱글맘, 돌싱, 현모양처, 가장 등등)되는 현대 사회에서 '주부로 살아간다는 것'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시선.  "균형 잡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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