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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카페에 갈 때마다 PETER CAT 을 상상하게 된다. 스물다섯 살의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카페 '피터캣'의 롤캐비지와 위스키, 담배 연기까지....
하루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쉽게 쓰인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를 쓱쓱 읽다가 카페 주인장으로서의 하루키를 만나니 반가웠다.
"열 명의 손님이 왔는데 그 중 한 명이라도 내 가게가 마음에 들어 다시 찾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신 그 한 명이야말로 정말 소중히 여길 것. 이는 비단 재즈카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일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고루 적용되는 법칙이다"
“불평하는 손님들이야 언제나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주인의 가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죠. 돈을 버는 것도 적자를 내는 것도 주인이니까.”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전함 바운티>라는 옛날 영화가 있었지요. 이단자들을 모두 배 밖으로 쫓아내 버렸죠, 아마.” (아주 까칠해서 매력적인 카페 주인장 모습의 전형이다 ^^)
하루키의 '피터캣'이 홍대풍이라면 파리의 노천카페나 물랑루즈 등등은 강남스타일이다.
가령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냈다”고 말하는 사르트르가 한국에 머문다면
홍대가 아니라 서래마을로 갈 것이라는 거다.
카페 ‘셀렉트’의 존재만으로 탄생되는 온갖 인연과 문학과 사랑과 역사가 책이 되다.
선그림의 재치있는 일러스트로 쓰여진 [파리 카페].
“나는 지금 카페에 가는 길이다.
카페는 중립지대여서 계절이 바뀌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카페는 문학하는 사람의 초연하고도 고상한 영역을 나타낸다.
나는 오로지 카페에서만 정련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_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카페의 커피향기가 사라지면 문학의 향기도 사라질 것이다. 카페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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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타일 사이의 '대중코드'가 스타벅스 풍이겠다. 
홍대가 오가닉 리넨을 고집하는 DIY옷집이라면
강남이 프린트와 촉감이 뛰어난 ‘드자이너’ 드레스숍이라면
스타벅스는 실용주의 대중브랜드 유니클로다.
그런데 순전히 커피가 좋아 커피밭을 돌아보러 떠난 뚝심의 여행 [커피기행]에는
커피의 본고장에서 발현되는 아프리카판 스타벅스 ‘칼디’ 얘기가 나온다.
그냥 ‘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소비국들은 공정무역커피 논의가 활발한데
아프리카 그들은 스타벅스를 쫓아간다. 그렇다면 칼디에서 팔 커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또다시 불공정무역커피가 될 텐데.. 책 읽다 딴생각만 많이 해서 큰일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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