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박정자의 책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는 부재 그대로 현대인들의 소비 행태와 그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제목의 탁월한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살며 이것저것 웬만한 책들은 읽고 살아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는 있지만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난파되어 살아남은 남자가 무인도에서 삶을 위해 투쟁을 버린다는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로빈슨 크루소도 사치를 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인가 말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곡식을 거두고 가축을 늘려가는 그의 이야기는 당연히 생존을 위해 살고자 애를 쓰는 한 인간의 안타깝고 눈물겨운 삶과의 투쟁일 뿐이었다. 나는 물론 응원을 했을 것이고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위에는 사치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었다. 높이 쌓여있는 식량의 더미를 보며 희열을 느꼈을 로빈슨은 실제적인 소비와 함께 정신적인 사치를 누린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우리의 사지에 붙어 있는 지방, 우리 정신 속에 두텁게 쌓여 기다리고 있는 기억들도 모두 자원 비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재미있는 비유였다. ‘문명이란 결국 여분의 비축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소비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문제이다. 또한 문화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소비가 없다면 문화는 존재하지 않고 문화는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비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의무’라고 까지 말한다. ‘소비하지 않으면 반사회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 또한 현대사회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실제로 소비의 사회에 살고 있다. 문만 나서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소비하게 된다. 아니, 문을 나서지 않아도 우리는 집안에서조차 소비한다. 전기를 소비하며, 물을 소비하고 냉장고를 소비하고 또한 정신적인 자원들도 소비하는 것이다. 소비는 향유가 아니라 기호라고 말하는 저자는 액세서리나 옷은 욕망을 이루기 위한 매개 수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르네 지라르의 그 유명한 ‘욕망의 삼각형’이론은 다시 봐도 재미있다. 우리가 실은 주체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흥미롭다. 나와 상품사이의 직선적인 관계가 아니라 매개자라는 하나의 점이 더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그 매개자를 통해 상품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매개자에서 비롯된 이미지인 것이다. 어느 연예인이 입고 나왔던 옷이나 악세서리에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또 다른 욕망, 즉 한 단계 더 나은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 가짜 명품들이 여기저기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 또한 돈이 많은 자들에 대한 우리의 욕망 때문인 것이다. 작가는 상류계급의 소비양식을 말하면서 미술의 예를 들고 있다. 상류계급의 소비양식을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다음 챕터는 ‘현대사회와 팝아트’인데 무척 흥미롭다. 상류계급의 선을 내려와 대중성으로 파고든 팝아트는 그 자체로 현대성의 특징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성을 반영한 예술가들도 상류층만 소비하던 고귀하기만 했던 예술이 이제는 누구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상업성의 옷을 입고 키치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챕터는 광고와 유행 등의 이야기들로 현대성의 소비를 이야기한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소비’이지만 현대성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무척 쉽고 다가가기 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신의 말대로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는 바로 인문학적인 ‘팝아트’ 그자체이다. 일종의 인문학의 대중화 혹은 팝아트적인 인문서로 난해한 논리를 걷어내고 평이하게 우리에게 나가 온 것이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 그의 다른 저서, 화가와 철학자를 통해 철학개념을 이야기한다는 <빈센트의 구두>도 읽어보고 싶게 만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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