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불교도서로 분류하기에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그만두기에는, 다소 아쉬운 책이다. 그냥 속세를 등지고 깨달음을 얻는 분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있는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한 에세이집 정도로 여기고 읽는다면 뜻하지 않는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세번째 작품이라고 하나 처음 접하게 된 나에게는 나름대로 읽는 기쁨을 누린 책이 아니었나 싶다. 책은 시종일관 잔잔하고, 때로는 애잔하고, 때로는 숙연하고, 때로는 쓸쓸함까지도 느끼게 해준다. 아홉 스님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 있다. 처음 이야기부터 강하게 다가온다. 말 그대로 공수레 공수거를 물씬 풍기게 만드는 이야기. 아무것도 남김없이 모두 주고 떠나는 스님의 입적이야기. 처음부터 무겁다. 하지만 깨달음의 의미를 아주 조금 느낄 수 있다. - 나의 내공이 짧은 관계로... 대학시절 힘들고, 지쳤을때마다 친구와 혹은 혼자서 찾던곳이 태능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산속에 위치한 고고한 절이었다. 그 곳에서 시원한 물한잔 마시고 산새와 자연과 노닐다 이름도 알 필요없고, 살던 집도 알 필요없는 한 스님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다보면 생각속에 있던 잡념들이 뭉게구름 사라지듯 흔적도 없이 날라감을 느끼곤 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스님. 그 분은 지금도 나와 비슷한 중년의 스님으로 어느 산속 산사에서 정진하고 계시리라...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깨달음은 무엇이고, 우리가 속세에서 왜 이리 고민하고 방황하는가에 대해 혼자 자문하게 된다. 잔잔하고도 잔잔한 아홉 이야기속에는 우리네 삶 속 모습이 담겨있다. 이 책은 굳이 처음부터 읽어내려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페이지를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제목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읽어내려가면 그 뿐이다. 결국 나머지도 읽게 될 테니 말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데 여느 책보다 배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가볍게 읽기에는 미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독서습관이 오히려 미안해진다. 천천히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보면 이내 마음속이 편안해 진다. 그래도 종교적 내음이 물씬 풍기는 책이기에 불교에 관심이 전혀 없는 독자라면 읽기에 고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것 조차도 깨달음이라고 여기면 못 읽을 것도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