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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단편이 주는 묘미는 역시 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장편은 장편나름대로 진득함과 서서히 빠져드는 맛이 있는 반면, 단편은 별식(別食)처럼 하나하나 색다른 맛이 있어 좋은 듯 싶다. 딱히 어느것이 좋다고 결정하기 힘든것이 바로 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게다가 장편인 줄 알고 읽었는데 그것이 단편이었을때 느끼는 기분은 또다르게 다가온다. 바로 '벽장 속의 치요'가 나에게는 그런 류의 책이었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이 상당히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고, 무엇보다 책의 가격이 일반 시중 서점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대부분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고 있다. 시중 서점은 그저 친구들 만날 때나 시간을 보낼때 가끔 들리는 곳 정도. 얼마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서두르다 보니 약속시간이 한참 남아 서점을 찾게 되었다. 워낙 일본소설을 좋아하다보니 가장 먼저 들린곳이 일본소설 코너.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일본소설을 보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많던 소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어 무심코 집어 들게 되었다. 귀여운 계집아이가 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 스럽기도 했지만 왠지모를 쓸쓸함이 전해졌다.
약속시간도 충분해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펼쳐들었다. 마침 첫번째 이야기가 '벽장 속의 치요'여서 당연히 장편인 줄 알았다. 첫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단편인 줄 알게 되었고, 이후로 'call' 과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네번째 이야기 '예기치 못한 방문자'를 읽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시간이 흘러 약속시간이 한참 지난던 것. 부랴부랴 책을 덮고 제자리에 두자니 표지의 치요가 쳐다보는 듯 싶어 책을 놓아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은 구입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머리속에서는 온라인 서점에서 사면 할인에 적립까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읽고 싶은 것을...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 호러와 미스터리와 유령이야기등 9편의 이야기 중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첫번째 '벽장 속의 치요'와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 '살인 레시피', '냉혹한 간병인' 그리고 '늙은 고양이'였었다.
첫번째 이야기 '벽장 속의 치요'는 슬프면서도 아쉬움과 함께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고, 두번째 이야기 'call'은 슬픔과 감동이, 세번째 이야기 '어머니의 러시아 스프'는 섬뜻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네번째 예기치 못한 방문자'와 '살인 레시피'는 이전의 작품에 비해 다소 가볍고 코미디스러움이 있어 살짝 웃음이 묻어나오는 작품이었다. 다음 '냉혹한 간병인'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그린 듯 하면서 마지막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늙은 고양이'는 어디서 들은 듯한 이야기 이지만 앞의 '어머니와 러시아 스프'처럼 섬뜻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의 작품이었다. 그외의 두작품도 앞의 작품들 못지않게 재미를 주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었다.
'벽장 속의 치요'를 읽으면서 '바로 이런 맛 때문에 일본소설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 9편이 담겨있는 '벽장 속의 치요'는 좀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절판에 잘 담긴 9가지 별난 요리처럼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것도 그동안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기에 그 새로움이 더 했을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오기와라 히로시. 그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있는 또다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