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위대함의 기호에만 매달린다,. 기껏해야 위대함의 아주 작은 메아리만을 받아들일 뿐이면서도. 그들은, 넓은 길이 아니라, 정원의 작은 빈터에서 시간의 힘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p.15

21세에 그토록 아름다운 소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쓴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그의 첫 소설을 읽고 어찌나 놀랐던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궁금하여 며칠밤을 골똘히 생각에 젖을 정도 였으니까. 그리고 그가 군 복무중에 썼다는 <압생트>를 보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도 출간하지 않았다. 전전긍긍. 프랑스어라도 배우고픈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리다 그의 또다른 소설 <시간의 지배자>를 만났다.

여전히 아름다운 소설. 문장과 문장 사이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은유와 상징들. 그의 글은 문장을 쭉 읽어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자간과 행간에도 그의 글은 스며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깊은 사유들이 행간에서 넘실대어 다른 소설을 읽듯 빠르게 읽을 수 없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천천히. 가능한 한 조금 더 음미하면서 읽어내야만 그의 글을 조금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권태로운 한 나라와 사람들. 그리고 시간의 달인 이라 불리는 시계공들의 이야기. 안개속에 가려진듯 흐릿한 내용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읽은 이의 혼을 쏙 빼 놓는다. 아름답다. 씹어 읽을 수록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글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가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대지를 향해 널름거리는 안개의 혀가 아니었다. 그들은 안개가 왕궁의 돌 위에 타락의 징조를 새겨 넣을까봐 두려워 했던 것이다. p.d26

거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그리고 뿌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원인도 끝도 없는 시간 그 자체 같은 사람이었다. p.68

폭군이 되어 왕국의 건설자가 되는 대신, 그는 기쁨을 모르는 향락자가 되었다. 무엇이든 즐거워하며,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애면글면 하지 않는.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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