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216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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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선다.

사람들 출구로 몰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뚱뚱한 아주머니, 뺨이 붉은 아주머니.

웃던 눈빛이

움찔, 꺾인다.

 

오, 아주머니.

당신께 아무 감정 없어요.

당신을 빈정거리지도 않고

당신 때문에 시무룩한 것도 아니에요.

당신께 무뚝뚝한 게 아니에요.

왜 그러겠어요, 제가?

 

오, 내 흉한 눈, 죽은 눈.

생각도 감각도 없이

바라보는 것을 시들게 하는

 

 가슴이 움찔, '생각도 감각도 없이 바라보는 것을 시들게 하는' 눈으로 사는 좀비같은 우리 모습이 콱 꽂힌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거울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시인의 눈은 역시 예리하다.

 자신에게 칼날을 세운 시들은 숨을 죽이고 읽어야하는 반면 밖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참 따뜻하고 포근하다. '비'라는 시에 비를 보며 시인은 나지막히 속삭인다 '아,저,하얀,무수한,맨종아리들,/찰박거리는 맨발들./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맨발들,맨발들./쉬지 않고 찰박 걷는/티눈 하나 없는/작은 발들./맨발로 끼여들고 싶게 하는.' 소녀같은 감성으로 빗방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가득찬 포근함이 시 전체에 묻어난다.

 또, '너는, 달을 아니?'에서 달이 따라온다며 겁먹은 얼굴로 걸어가던 엄마가 '안녕히'라는 시 속의 죽음과 손 잡은 그녀인 것만 같아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바람같은 영혼으로 나뭇가지를 샅샅이 훑어 내리는 시인의 감성에 빠져들게 만드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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