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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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참 많다. 하지만 우울한 마을의 일이니 대체적으로 우울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첫 장면에서부터 우울증을 앓아오던 여자의 죽음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은 등장인물 뿐만이 아니다. 장르의 혼합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어떤 장르나 구성에 소속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작가 스스로가 어떠한 줄거리로 갈까 고민하며 써간듯 싶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작가의 욕심으로 이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넣고 싶어한 듯한 그런 이야기다. 바다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깜놀 하고 말았다.  

단연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 몰리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그야말로 미친여자이지만 시오에게 애틋한 연정을 품게하는 매력을 가진 여자다. 그리고 결국은 바다괴물과의 이상한 교감을 할 수 있는 여자가 바로 그녀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점에서 몰리에게 매력을 발견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녀가 과거에 영화에 출연한 전력이 있다지만 그것만으로 현재 미치광이인 그녀에게서 어떤 매력을 감지한다는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지 않나 싶다. 굳이 찾자 한다면 그녀의 엉뚱함 이라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 왜 갑자기 바다괴물이 등장한 것일까 그 부분에서 나는 의문을 품었다. 많은 인구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 우울증으로 인한 세로토닌 결핍이 바다괴물을 마을로 끌어들인다. 바다괴물은 세로토닌 결핍을 가진 인간을 먹이로 사냥한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데 흥분이나 격한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한다. 충분히 분비되면 불안, 우울함이 사라지고 평온을 찾게 하지만  결핍되면  생활에 활력이 줄고 긴장감과 걱정, 불안 등이 더해진다. 괴물은 이런 인간들을 먹이로 사냥하면 지낸다. 하지만 몰리라는 온혈동물에게서 이상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처음 괴물은 암컷을 찾아 이 마을에 찾아들었지만 암컷이라 생각한 이상한 물체에게서 거부를 당한다. 하지만 바다로 다시 돌아간 후엔 사정이 달라진다. 결국은 이 바다괴물에게도 결말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작가라면; 등장인물을 조금 줄이고 이야기가 분산되는 걸 막기 위해 사건들을 조금 줄일 것 같다. 바다괴물이 등장하려면 뭔가 조금 더 큰 복선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특이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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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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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 사실은 아니되 사실보다 더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 작가는 가미가제 특공대에 조선인이 일부 포함되었다는 역사적 근거로 이 소설을 탄생시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왠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자국의 전쟁도 아닌, 나라를 빼앗긴 이민족의 젊은이들은  마지막 비행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감히 그 심정을 추측할 수가 없다.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은 현세대의 젊은이들조차 그 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그러니 그 시대를 겪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오죽 하겠는가 한일이라는 두 나라의 이름이 붙는 것만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흥분과 긴장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과거의 힘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시대를 귀동냥으로 얼추 들었을 뿐이다. 독립군들의 이야기,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다던 할아버지 이야기. 어쩌면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장님인 현세대들에게 점자로 된 역사서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별아의 선택은 참 탁월했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허구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이다.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이야기. 김별아가 추구하고 노력한 이상이 조금은 이 소설에서 달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의 불량선인, 시대의 번외자, 시대의 방관자, 하경식,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뒤로 가는 구조다. 언제나 작금의 나를 반추하려면 그 이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는 뼈대있는 가문의 자식도 아니요, 갑부의 자식도 아닌, 가장 낮은 신분 중에서도 더 낮은 백정 집안의 자손이다. 또한 그의 할머니 올미는 겁간으로 몸을 망친 백정의 딸이다. 그녀가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로 뭇 젊은이들의 호감을 사고 있었던 일은 물 건너가 버렸다. 몸을 망쳤으니 당연히 목숨을 버려야 하는 것이 당연했을 테지만 용감하고 지혜로웠던 그녀는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대신 새로운 삶을 택한다. 그것은 치욕스럽거나 간교해 보이기 보다는 그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대담한 용기였다. 물론 하경식의 할아버지 쇠날이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태어난 아이는 겁간으로 잉태된 아이였다. 비극은 언제나 인생의 양념처럼 어느 순간에나 약간은 버무려져 있기 마련이다. 그 겁간의 자식 또한 약간은 용감하고 약간은 간교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그의 탓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그 시대에 대한 비극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로지 더듬더듬 추측만 할뿐.  

전세대의 비극은 다시 다음의 세대로 유전된다. 명망있는 집안 출신인 어머니와 많은 돈을 벌어들인 아버지, 잘생기고 영특한 형, 하지만 이들의 보기좋은 조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은 이 가족이 시대의 비극이 투영된 하나의 작은 조합였기 때문이다. 하경식은 시대를 방관하며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그 시대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시대가 하나의 하경식, 수많은 하경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방관자로 외따로 떨어져 살아가고자 했지만 너무 거대한 시대적인 상황이 그에게 흡수되고 만 것이다. 희극과 무의미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뇌관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폭발을 하게 된다.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 - 에머슨,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말고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라!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어 죽음에게 당도한 주인공에게 누군가는 말한다. 너의 마차를 저 별에 걸어라. 그리고 그 말은 어떤 주문처럼 그에게 다른 삶의 길을 안겨준다. 그렇다. 운명은 언제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순간에 작고 밝은 문을 한쪽으로 열어둔다. 운명이 언제나 우리에게 가혹하고 뼈아픈 식민지의 시대를 각인시켜 놓았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깨어있으며 열린 사고로 살아가려 한다면 운명은 다른 문을 우리에게 열어 둘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쇼들에게 아직도 식민 통치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 운명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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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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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누군지 아세요?" 

"코끼리." 

"어떤 코끼리요?" 

"분홍색 코끼리." 

"뭐 하고 있어요?" 

"지나가고 있어." 

맹랑한 녀석과 유정과 몸에 흉터가 많은 나와 독실한 무슬림이지만 돼지고기를 파는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 이따금 사랑스럽고 대부분 저주스러운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그 외의 이상야릇하고 매력적인 빈민들의 주거구역이 있다. 정신 나간 열쇠장이에게 제가 누군지 아세요?라고 친절하게 묻는다면  "분홍 코끼리 이야기"를 항상 꺼내주는 곳, 기실 그곳은 제각각의 인종과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홍 코끼리들의 서식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자는 정신 나간 열쇠장이다. 그들은 다른 인종과 다른 상처 다른 연령대 다른 성별 을 가진 제각각의 사람들이지만 그 잡다하게 '섞여있음'으로 인해 더 큰 통일을 이룬다. 사실 처음부터 지극히 '순종'이었던 것이 존재 하기는 한단 말인가? 우리는 무수히 다른 피로 수혈된 극도의 잡종이지만 그 '잡종스러움'을 숨기고 살아간다. '순종'인 척, 순수한 피를 가지고 고결한 척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잡종의 피를 숨길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내가 '이방인'이 되 있을 때, 내가 타인과 지극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때는 '잡종'의 표식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종국에는 나의 이름표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홀로 잡종이 되고 비난의 화살은 나의 잡종스러움을 싸잡아 욕한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이것은 하산 아저씨가 흉터를 해부하고 나서 내린 진리다. 이 소중한 메뉴얼은 몸에 흉터가 많은 주인공에 전달된다. 기실 흉터란 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다독거림 같은 것이었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상처가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이뤄진 이 가시덤불을 헤쳐나간다면 누구나 너와 같은 상처를 가질 수 있다는 전언이다. 그 흉터를 보이는 곳에 갖고 있느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지고 있느냐가 차이일 뿐이다.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그가 자신의 전공을 과장했더라도 네게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했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거라. 그는 영혼이 상처받은 사람이란다.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쯤을 떼어주고 영혼을 지킬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기꺼이 그걸 선택했을 거란다.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던 꼬마아이는 몸에 있는 흉터를 버리지 않고 그 흉터를 끌어안으며 세상을 껴안는 방법을 하산 아저씨로부터 배운다. 하산은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 비록 스스로를 과장되게 꾸미는 사람일지라도 상처받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라 말한다. 흉터를 가진 아이는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모은다. 그리고 지나가는 코끼리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인 것 같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 무수한 얼굴들을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 있기에 그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어떤 인종인지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나 있는 그의 대한 설명들이다. 이 설명들을 제거한 뒤 그를 본다면 지극히 순수해서 잡종적인, 상처받고 슬퍼하는 여린 영혼이 있을 뿐이다. 흉터의 아이는 수많은 잡종의 얼굴들을 통합하고 비로소 그곳에서 지극히 순수한 '순종'의 얼굴을 찾으며 성장한다. 

"신은 네 안에서 잔다. 신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단다.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지" 

그런 통합의 순간, 안에서 자고 있던 신은 그 궁금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일어난다. 신 또한 우리처럼 호기심이 많을 것이다. 늘 타인이 아니고서야 들킬 수 없는 엉덩이 같은 곳에 인생의 비밀을 감춰두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따금 사랑스럽고 대부분 저주스러운 안나 아주머니라는 문장에서부터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겨버렸다. 너무나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하고(하나 버릴 것 없는 캐릭들이다. 이 캐릭터 하나 하나로 또 다른 소설을 써도 좋을만큼)작가의 가벼운 터치가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지극히 무겁고 침울해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의 등장이나 정신나간 열쇠장이 아저씨등등의 캐릭터들로 이야기의 무거움이 많이 제거됐다. 자기연민에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캐릭터들은 그런 위험요소에서 벗어나 작가가 내뱉는 유머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극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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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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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선택이 눈앞에 닥칠 때마다 정지보다는 움직이는 쪽을, 그리고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쪽을 택했다. "  

이 한 문장이 주인공 니시무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변한다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도쿄의 지하철을 배회하며 사람들의 지갑을 터는 소매치기인, 그에게도 나름의 삶의 법칙은 있다. 제 3자에게는 쓰레기로 비칠 지도 모르지만 그의 행동방식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삶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로 그가 '부자'들만의 지갑을 노린다는 것, 그리고 친구와의 의리를 저버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길거리에서 만난 꼬마 아이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그 엄마를 설득해 아이를 양육시설에 맡기려 한다는 점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자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타인의 지갑을 터는 삼류 양아치는 세상에 널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가 했던 첫 번째 행동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 '지갑을 훔치는 행위였다'  부자들의 지갑을 터는 행동은 그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고정된 세계로 손을 뻗어보는 행위이며, 모든 것을 이미 정해져 있다 호언장담하는 사람의 손목을 꺾는 행위이며, 더욱 과장되게 말한다면 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이다. 그것은 발칙하고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모든것이 탄로나는 때가 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처벌자가 바로 '신의 대리자'인 기자키이다. 그는 그렇기에 니시무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니시무라를 처벌하는 것도 그가 된다. 단지 이유없이 그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네가 만일 악에 물들고 싶다면 결코 선을 잊어서는 안 돼"   "그 실패에서 오는 감정을 음미하고 즐겨봐 죽음의 공포를 의식적으로 즐기란 말이야. 그걸 할 수 있을 때 너는 너를 초월할 수 있어 이 세계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기자키는 말한다. 니시무라의 손발을 묶고 그가 자신의 휘하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도록 만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떤 귀족이 스스로 신의 흉내를 내며 부렸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기자키가 여기서 생각하지 못한 것은 바로 '변수'다. 이야기 속의 귀족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는 허구의 것이고 누군가와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지 현실보다 비현실적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것과 같이, 이 이야기의 끝에는 변수가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다. 니시무라가 멀리 피 묻은 동전을 떨어뜨리는 장면, 내게 그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연약한 인간의 강인한 행동으로 보였다. 상상하지 않아도 나는 니시무라의 또렷한 눈동자와 꼭 깨문 입술이 보았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먼 탑, 그 누구도 허물 수 없을 것 같은 탑을 향해 연약한 니시무라는 보란 듯 동전을 던진다. 그것이 누구에게 발견되었는지 발견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 기자키! 넌  내 주머니 속의 동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지 하지만 내겐 이 피 묻은 동전이 있단다 봐! 내가 저 멀리 이 동전을 던져주겠어!" 라고 소리치는 니시무라의 '의지'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시한 인간이 되지는 마 혹시 비참해지더라도 언젠가는 꼭 바꿔"  

그가 어린 아이게 말했다.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순간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진창을 뒹굴고 있더라도 그 변화의 순간을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며 우리이다. 우리의 손 안에는 언제나 작은 동전이 쥐어져 있다. 그것을 멀리 던지는 순간 그것은 주사위가 되어 먼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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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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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내 인생의 책들'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분명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이 끼어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괜찮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분명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을 꼽을 것이다. 이미 지인들에게 이 책을 꼭 읽으라고 말하고 있고, 나의 조카들에게 먼 훗날 나의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작은 나무'라는 어린 아이가 체로키 인디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 숲 속에서 살아가며 성장하는 성장소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잊고 지냈던 우리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삶에 관한 작은 지혜들, 발견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 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관한 철학이라 말한다면 될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방법에 관해 알고 있다. 물론 현시대에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문명과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어리석게 시대를 거스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딱딱한 벽과 회색의 건물들 사이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낸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풍족한 삶을 살지만 주위에는 수많은 범죄와 환경오염 고통과 불행이 산재해 있다. 육체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지만 정신은 피폐하고 불행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육체에게만 맛있는 먹이를 주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잠자리를 마련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피곤한 정신에게 좀더 맑은 공기와 휴식으로 아량을 베푼다면 우리의 정신 또한 지금의 격렬한 흥분과 아픔을 넘어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나를 넘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해의 방법'을 아는 것이다.

"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며 억지를 부려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이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흔들리는 나뭇잎과 빗물에 고여 있는 물방울의 움직임, 숲 속을 지나치는 작은 짐승들의 몸놀림을 조금만 여유있게 지켜보다면 우리는 큰 발견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모든 것들과 우리들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도 가만히 쳐다보면 인간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다. 나무의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면 송진이 흐른다. 인간의 살에 상처를 내면 피를 흘리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이 흔들면 나뭇잎이 흔들린다. 누군가 나에게 수많은 고통의 말들을 쏟아내면 내 정신이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나무도 나도 모두 닮아 있는 이 지구라는, 이 자연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함께 숲 속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자연과 인간이 따로 떨어진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 인간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뿐만이 아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 또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작은 나무'가 늑대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기도하는 날들 뒤에, 드디어 집에 돌아와 온 숲의 나무들과 강물, 짐승들이 '작은 나무'를 반기며 소란스러운 때도 왔으니 말이다.  

 "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그다지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 기분이 더 안 좋았을 거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그렇게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언제나 영원한 것은 것은 없다. 우리가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차라리 그 기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 사라지고 텅 빈 순간이 찾아오는 것 또한 고통이다. 사랑한 순간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없을 것이다. 그저 혹독한 그 순간을 견디는 것, 그 춥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 생명있는 것들과 사람이 견디어야 할 법칙이다.  다시 올 봄을 위해서 자연은 또 다른 성찬을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불현듯 끝나 너무나 아쉬운 맘이 컸지만 '작은 나무' 가 인디언 연방을 찾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들, 그 와중에 겪는 수많은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상상하고 떠올려 보자 작은 나무가 길위에서 성장하며 커진 어깨와 검은 눈망울로 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바로 그 곳에 우리가 찾아 헤매었던 우리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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