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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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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누군지 아세요?" 

"코끼리." 

"어떤 코끼리요?" 

"분홍색 코끼리." 

"뭐 하고 있어요?" 

"지나가고 있어." 

맹랑한 녀석과 유정과 몸에 흉터가 많은 나와 독실한 무슬림이지만 돼지고기를 파는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 이따금 사랑스럽고 대부분 저주스러운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그 외의 이상야릇하고 매력적인 빈민들의 주거구역이 있다. 정신 나간 열쇠장이에게 제가 누군지 아세요?라고 친절하게 묻는다면  "분홍 코끼리 이야기"를 항상 꺼내주는 곳, 기실 그곳은 제각각의 인종과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홍 코끼리들의 서식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자는 정신 나간 열쇠장이다. 그들은 다른 인종과 다른 상처 다른 연령대 다른 성별 을 가진 제각각의 사람들이지만 그 잡다하게 '섞여있음'으로 인해 더 큰 통일을 이룬다. 사실 처음부터 지극히 '순종'이었던 것이 존재 하기는 한단 말인가? 우리는 무수히 다른 피로 수혈된 극도의 잡종이지만 그 '잡종스러움'을 숨기고 살아간다. '순종'인 척, 순수한 피를 가지고 고결한 척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잡종의 피를 숨길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내가 '이방인'이 되 있을 때, 내가 타인과 지극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때는 '잡종'의 표식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종국에는 나의 이름표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홀로 잡종이 되고 비난의 화살은 나의 잡종스러움을 싸잡아 욕한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이것은 하산 아저씨가 흉터를 해부하고 나서 내린 진리다. 이 소중한 메뉴얼은 몸에 흉터가 많은 주인공에 전달된다. 기실 흉터란 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다독거림 같은 것이었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상처가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이뤄진 이 가시덤불을 헤쳐나간다면 누구나 너와 같은 상처를 가질 수 있다는 전언이다. 그 흉터를 보이는 곳에 갖고 있느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지고 있느냐가 차이일 뿐이다.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그가 자신의 전공을 과장했더라도 네게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했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거라. 그는 영혼이 상처받은 사람이란다.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쯤을 떼어주고 영혼을 지킬 수 있었다면 그 역시 기꺼이 그걸 선택했을 거란다.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던 꼬마아이는 몸에 있는 흉터를 버리지 않고 그 흉터를 끌어안으며 세상을 껴안는 방법을 하산 아저씨로부터 배운다. 하산은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 비록 스스로를 과장되게 꾸미는 사람일지라도 상처받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사람이라 말한다. 흉터를 가진 아이는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모은다. 그리고 지나가는 코끼리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인 것 같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 무수한 얼굴들을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 있기에 그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어떤 인종인지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나 있는 그의 대한 설명들이다. 이 설명들을 제거한 뒤 그를 본다면 지극히 순수해서 잡종적인, 상처받고 슬퍼하는 여린 영혼이 있을 뿐이다. 흉터의 아이는 수많은 잡종의 얼굴들을 통합하고 비로소 그곳에서 지극히 순수한 '순종'의 얼굴을 찾으며 성장한다. 

"신은 네 안에서 잔다. 신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단다.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지" 

그런 통합의 순간, 안에서 자고 있던 신은 그 궁금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일어난다. 신 또한 우리처럼 호기심이 많을 것이다. 늘 타인이 아니고서야 들킬 수 없는 엉덩이 같은 곳에 인생의 비밀을 감춰두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따금 사랑스럽고 대부분 저주스러운 안나 아주머니라는 문장에서부터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겨버렸다. 너무나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하고(하나 버릴 것 없는 캐릭들이다. 이 캐릭터 하나 하나로 또 다른 소설을 써도 좋을만큼)작가의 가벼운 터치가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지극히 무겁고 침울해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의 등장이나 정신나간 열쇠장이 아저씨등등의 캐릭터들로 이야기의 무거움이 많이 제거됐다. 자기연민에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캐릭터들은 그런 위험요소에서 벗어나 작가가 내뱉는 유머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극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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