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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기 전에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아직도 덜익은 밤 한톨을 꼬독꼬독 씹어 먹는듯 입안에서 개운치 않은 것들이 맴돈다. '그 날이 오기 전에'를 읽고 난 느낌이란 게 이렇다. 삶을 그리 진지하게 살아가지 않은 내게 뭔가 강펀지를 날리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기세였다.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그림자는 내 얼굴을 그리 밝지 않은 인상으로 남기는데 성공했다. 진지함과 감동이라는 감정을 호소 혹은 협박당하며 그들의 주변을 차근히 보게 만들었다.
7편의 소제목에 따른 중단편의 한 목소리는 바로 '죽음'을 가까이 한 자들의 발자국들이다. 그게 나일수도 먼저 떠난 남편이나, 하나밖에 없는 혈육 내 어머니일수도 있다. 의외로 이 책이 마음에 든 점은 '죽음' 의 상황이 대놓고 눈물로 호소한다거나 하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각 상황들은 오히려 담담했고 초조하지 않은 얼굴로 죽음을 맛보도록 인도했다. 호들갑이라고 표현하는게 좀 뭣하지만 통곡에 나날로 여생을 보냈다 투의 분위기 조장의 틀은 애초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고 과거를 정리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되었다 정도이면 모를까. 우리네 삶도 '죽음'이 무조건 삶의 마지막 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은, 굳이 죽음을 슬프게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각각의 주인공을 통해서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보내다가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나오면 불과 보름 만에 죽는다. 어렸을 적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새삼스레 머리 위를 짓눌렀다. 어쩌면 땅속에서 보내는 시기를 '유충'이라고 부르는 게 문제인지도 모른다. 매미는 원래 땅 속 생물이고, 지상에 나온 뒤의 모습은 '성충'이 아니라 '수의(壽衣)'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불과 보름밖에 남지 않은 생명을 슬퍼할 일도 없다. 매미는 이미 땅속에서 충분히 산거니까. 날개가 돋아난 뒤의 지상에서 보내는 시간은 '만년'에 불과한 거니까...... -p.115 중
아쉬움의 기로에서도 날개를 펴고 열심히 살았노라 충분히 느끼는 그 것. 그리고 내 날개를 매만져 주던 그들과의 사랑. 이것들을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이 죽음의 끝을 끝이라 말하지 않게 해주는 건 아닐까.
'그날이 오기 전에'가 좀 더 임팩트 있는 스토리나 기발함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각각의 중단편이 교묘히 맞닿아 흐르는 점을 찾는 재미는 흥미로웠다. '죽음'의 상황에 닥친 자들이, 혹은 이미 겪어낸 자들이 어떻게 내일의 날개를 펼칠 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