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누군가와 속깊은 대화를 하고 나면 가슴 한가운데부터 퍼져 나오는 온기로 한동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시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함께일 수도, 아니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마음만 통하면 말을 나눈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상황이나 분위기, 상대방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개인이 가진 성품상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내고 공감하며 잘 경청하는 배려가 돋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내 경우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와, 좀 덜 친해도 오히려 더 터놓고 말하게 되는 친구가 있다. 물론 누구나 상대방을 봐가며 마음을 털어 놓는걸 테지만 그것이 꼭 친밀함을 전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라도 잘 할 수 있는 편이긴 하지만, 실상 왕왕 있는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냥 속 시원히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타입이 있어서,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편으로 시간을 나눠 준다지만 이럴 때 결코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을 주고받는 쪽에 무게를 두기 때문인지 그야말로 ‘수다’냐 ‘대화’냐를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유익한 ‘대화’를 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가령 부모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렇다. 친밀감이야 말할 것도 없는 사이지만 그리 다양한 주제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못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해도 솔직하게 표현해 본 일이 없으며, 엄마와 드라마 이야기로 수다를 떨 수는 있어도 정작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말한 적은 없는 그런 데면데면한 사이다. 부모가 그리 다정하게 경청해주는 편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타고난 내 성격이 과묵한 편이어서 였을까 부모와 대화를 해본다는 건 어지간해선 상상이 잘 안되는 풍경이다. 이게 또 크게 불만인 것도 아니어서, 그저 부모와 친구처럼 친하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주고받는 관계를 보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면서도 내겐 좀 먼 사람들 이야기처럼 보이고 마는 것이다. 대신에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면 간섭을 덜 받는다는 점도 크게 만족할 만한 수준이어서 딱 이 정도로의 거리를 적당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편이다. 그러니 내게 부모와 정기적으로 어떤 주제를 두고 생각을 교류하는 일은 가히 생경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을 보면서 어떻게 자기 엄마와 책에 대한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신기하다는 말을 하려고 장황하게도 말을 늘어 놓았다.
책에서 어머니인 메리 앤 슈발브 여사는 저명한 교육자이자 난민구조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해 온 특별한 분이어서 이런 질 높은 대화가 가능했겠구나 하고 금세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러나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암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 오는 상황에서라면 이력이라는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식들에게 고백하고, 유언처럼 앞으로 너희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당부 정도를 예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럴 때 지식인이든 아니든 사람이라면 으레 비슷한 마음으로 추렴되는 상황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화학치료를 받기 전의 시간 틈에 아들과 책에 대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상 밖의 일이거나 하는 놀라움은 없었지만 참 한결같다라는 인상은 새삼 놀라운 것이었다. 주변을 정리하거나 가능하다면 여행을 다니는 등 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알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기 때문이었다. 이런 삶의 태도가 남은 어머니 삶에 큰 행복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만남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읽게 된 책은 환자에게 희망만을 던져줄 수 있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책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각자 그때그때 생각해둔 다양한 책을 선정한다. 그 중에는 어머니가 평소 난민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무겁고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진중한 문제작도 다수 포함된다. 이런 주제들 때문에 아들도 책 선정에 주저하거나 고민하는 흔적이 없지 않지만, 어머니는 결코 세상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분이 아니기에 세상의 문제를 직시하고 방법을 아들과 대화로서 모색해 본다. 이런 모습들이 참 지식인의 면모를 엿보이게 해준다.
아들은 책에서 어머니에게 닥칠 죽음의 불행에 대해 좌절하고 무기력한 어조로 단 한 번도 표현하는 법이 없다. 어머니가 자신의 고통을 크게 표현하지 않는 분인 것처럼, 그도 아직은 어머니가 살아 계시니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일이며, 함께 나누는 지혜를 발견하는 기쁨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들 가족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처음 있는 일이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의 감정을 고스란히 떠안겠구나 하는 두려움들이 단 몇 페이지를 읽고는 싹 달아나 버렸다.
죽음으로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가족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하고 싶은 일을 생애 끝가지 즐기면서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진심이 다해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삶의 지혜를 몸소 보여준 어머니의 이야기, 참으로 위대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한 여자의 이야기이자, 누구나 ‘이런 멋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라는 또다른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머니와의 북클럽 때문에 그동안 읽지 못해 책장의 한 구석에서 자꾸만 눈에 밟혔던 책을 비로소 만나게 된 작은 기적처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일들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정임을 상기시켜주는 것, 이것은 아무래도 근사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