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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의 언어는 세상의 모든 말이기도, 가장 소외되거나 버려진 궁지의 말이기도 하다. 시를 읽다 보면 분명 익숙한 세상의 언어로구나 싶다가도, 매료되는 순간 마치 처음 본 눈동자에 끌리는 순간처럼 아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은 아마 ‘낯설다’라고 표현할 것이다. 시는 소설과 에세이에서 처럼 우리의 삶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일과 목소리, 문득 물음표가 던져지는 사사로움을 말하려 한다. 다만 응축된 언어들의 배열이 낯설어서 우리는 시를 어렵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잉태된 것이며 동시에 시인마다의 고유한 눈이 그 보편성을 단 하나의 언어로 변환시켜주는 혜안이 부려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는 가장 내 시야의 가장 대척점에 서서 낯선 얼굴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것이다. 시인은 마치 세상을 사막 위를 걷는 방랑자처럼 떠도는 자, 우주의 별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는 모래의 무덤 위 그 세상의 가장자리를 응시한다. 그래서 시인은 어쩌면 소외된 언어를 줍는 수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시인이 부린 언어를 보고 있으면 천애 고아의 울음처럼 바람길 따라 퍼지는 울림에 그 끝을 모르고 막막함이 펼쳐지는 것 같다. 우리는 어째서 시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리 슬픔만이 남아 떠도는데도. 물론 그렇지 않은 시도 많긴 하지만 대게 ‘시’란 홀로 피어나고 바람결에 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이름 모를 홑씨 같은 습성이 있다. 슬픔의 대지 위에서 그 눈물의 샘을 먹고 자란 꽃, 그 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자의 입김에서 붉어지고 터지는 가련한 숙명이 있다. 어느새 날아가 버린 수많은 홑씨들의 언어들이 아득한 세상의 언어처럼 알알이 박히는 일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평생 시와 연애하는 네 명의 글쟁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추억으로 또한 사랑만으로 이야기를 짓는다. 공통된 생각을 짚자면 이들이 생각하는 시는 변방의 풍경을 말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전형이거나 세계의 질서, 순응의 낱말과는 거리를 둔 전복적이고 일탈하며, 마구 움직이는 상상력의 세계관이 담겨 있어야 진짜 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흡사 우주의 근성과도 같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라는 중심에서 바라보는 규칙과 질서들은 알면 알수록 얼마나 우리가 틀린 존재들인가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고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면서, 변화와 상상력을 모색할 때 유연한 진실이 다가오게 돼 있다. 시 역시 세상의 가장 낯설고 뜻밖의 정경을 발견할 때 비로소 교감하고 정서적인 나눔이 생겨나는 것이다.
네 명의 눈에 들어온 몇몇 시를 보고 있자니 역시 그동안 읽지 않았던 시집들에 눈이 가게 되었다. 책장에 꽂힌 많지 않은 시집들의 목록을 죽 보면서 문득 최근 들어 시집을 전혀 사지 않았다는 실감에 부끄러웠다. 아닌게 아니라 나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시를 사 읽는지 모르겠다. ‘전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거의 읽지 않는다’라고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고 읽지를 않는다는 사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시를 읽는 마음의 여유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럴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손에는 항시 자판과 휴대폰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여백을 지워나간다. 뭐라도 읽고 재미를 선사해주면 그만 아닌가 하면 또 모르지만 대개 이 매체들이 얼마만큼 유익한지는 미지수가 아닐까.
확실히 종이의 질감을 느끼면서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행위에는 최소한 간극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새겨질만한 순간이 포착되면 읽는 행위도 멈추게 되고 자신만의 영원한 시간이 펼쳐지게 된다. 이것이 소설을 읽든 시를 읽든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일 텐데 사람들은 이를 점점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시는 완벽한 풀이를 위한 것이 아니며, 무궁무진한 길이 펼쳐진 변화의 언어가 살아 움직일 뿐이다.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사람은 변화하고, 추억을 더듬기도 하는 시간을 선사 받는다. 비록 시의 언어가 우리가 말할 때와 같은 문법의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고, 전혀 가 박혀야 할 단어가 아닌데 있다는 다소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이럴 때야 비로소 시가 시다워 진다는 아이러니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물론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말의 퍼즐을 맞추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렇고, 이 논리의 함정에서 당당히 벗어나는 읽기가 가능해질 때 진정 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시는 항상 착란하고 세상 밖을 몽상하는 일로 풍부해질 수 있다.